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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May 18. 2023

집 밖을 못 나가겠어

무기력 극복기(1)



지난겨울 나태가 일상을 좀먹어 들어가는 과정을 생생히 목도했다.

추위 타는 걸 병으로 친다면 중증이라 할 수 있는 육신 때문에 겨우내 담요를 두르고 히터에 찰싹 붙어서 지냈다. 몇 년 전부터 수족냉증이 더욱 심해져 이러다 발을 톡 치면 언 발이 와사삭 부서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 절로 되었다. 추위에 골골대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어머님께서 장만해 주신 (가엾은 두 발 짐승의 깃털을 무자비하게 뽑아 만든) 외투에 파묻혀 눈만 내밀고 있어도 겨울 북풍은 바늘구멍만 한 틈으로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한번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언 몸이 녹는데 두세 시간씩 걸렸다. 히터가 내뿜는 뜨거운 바람을 몇 시간씩 수혈해야 겨우 피가 돌아 체온 조절에 이상이 온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그제야 사그라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불가피한 일이 아닌 이상 외출을 금했다.

집 안은 형편이 좀 나았지만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추운 집을 얻은 바람에 난방비가 폭탄처럼 터졌다. 말일마다 우편함에서 관리비 고지서 폭탄을 제거할 때면 손이 덜덜 떨렸다.

아이를 등교시키자마자 히터에 널어놓은 발은 하교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두툼한 양말을 신고 히터에 발을 얹어 놓으면 발이 타지 않는다. 피부 건강을 위해서 히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들으면 경악할 소리겠지만, 대신 뜨거운 열을 견디다 못해 피부가 허옇게 질려서 각질이 돼 봉기하는 사태를 참아야 한다.

히터 앞을 떠나는 경우는 최소한의 집안일과 끼니를 해치울 때뿐이다. 휴대폰과 책을 번갈아들며 소파에 누워 발은 히터에 걸쳐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집 안에서조차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생활하는 입장이다 보니 밖을 나갈 수밖에 없는 일이란 음식물쓰레기 처리와 급하게 떨어진 식재료를 구입해야 할 때뿐이다.

쓰레기 버리는 일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룰 수 있지만 내일 당장 아침거리가 없는 상황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어느 날 계란이 떨어졌다. 계란은 다양하게 조리돼 아이의 아침 식사를 도맡는 중요한 식재료이다. 한쪽 면만 익힌 프라이를 따뜻한 밥 위에 얹어 노른자를 톡 터트려 간장과 참기름을 한 스푼씩 두르고 삭삭 비벼서 계란밥을 만들기도 하고, 멸치육수를 내서 파, 양파, 당근을 채 썰어 넣고 한소끔 끓인 뒤 풀어놓은 계란을 부어 탕을 만들기도 하고, 기름을 두르고 달군 팬에 계란 물을 얇게 부어 치즈, 익힌 닭고기, 다진 채소 등을 올린 뒤 돌돌 말아 계란말이를 만들기도 한다. 시간이 없는 날은 그냥 삶기만 해도 따뜻한 음료와 함께 든든한 한 끼가 되었다.


그런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 첫날은 아침 냉기가 좀 가시고 나면 오후에 사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가 되자 그 생각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를 냉큼 ‘내일 가지 뭐’라는 생각이 차지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생각처럼 되지 않아 계란 사러 가는 일은 점점 요원해져 갔다. 내일 사러 갈 건데 굳이 인터넷으로 주문할 거까지 없다는 결정은 매일 실패한 결정이 되었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똑같은 길을 밟았다.

그 사이 아이는 계란 없는 아침밥을 먹었다. 볶음밥, 주먹밥, 토스트 등 급한 대로 돌려가며 때운 식단도 바닥이 난 아침에 대충 냉장고 속 재료로 얼버무린 을 먹여 아이를 등교시키고 난 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오백 미터 떨어진 그곳이 삼장법사가 죽을 각오로 향했을 천축국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도대체 왜 그럴까를 계속 따져보다가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못 나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머릿속이 뻣뻣해졌다.

심증이 정말일까 봐 굳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일단 옷을 갈아입는다. 이건 가능할 듯했다. 다음으로 대문을 연다. 불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곧장 오백 미터를 걸어서 천축국에 당도해 열 알의 경전을 손에 넣는 대목에서 그만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절대 오백 미터를 걷지 못할 것이다. 부처의 손끝에서 마주한 다섯 개의 거대한 봉우리에 또렷이 적혀 있었다. 나는 결코 오백 미터를 걸을 수 없다고. 오행산에 갇힌 손오공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날 밤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가수 박완규의 강연을 떠올렸다. 세바시에서 진행한 ‘1평짜리 침대 감옥에서 나를 부활시킨 것’이라는 제목의 강연이었다.

몇 년 전 통제 불가능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일상이 망가지고 일을 하지 못해 힘들었던 고백을 들려주었다. 불안감이 극에 달해 집안에서조차 다른 곳은 안전하지 않게 느껴져 4년간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암담했던 시간을 떨쳐내고 가족과 꿈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침대 밖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고 한다. 그다음 날은 두발 세발 그렇게 심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늘려가다가 마침내 대문을 열고 동네를 걸을 수 있게 된 이야기를 담담히 전했다.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당신, 나와서 함께 걸어보자며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힘차게 외치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자 마음이 울컥했다.


겨울 동안 나의 일상을 톺아보았다. 나는 계란만 사러 못 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춥다는 이유로 잘 다니던 독서반을 그만두었다. 독서반을 가지 않으니 짬짬이라도 하던 공부를 그만뒀다. 춥다는 이유로 샤워는커녕 이틀 씩 세수를 안 하기도 했다. 옷 갈아입기도 그만두었다. 눈을 뜨고 누워서 휴대폰만 들여다보다가 눈이 피로해지면 그대로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오전, 오후, 밤까지 하루에 세 번씩 자도 잠은 계속 쏟아졌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보다 감고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겨울이 가고 나면 일어날 거라고 다짐했지만 영영 소파와 히터와 담요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덮쳐왔다.


무엇이 두려운지 생각해 보았다. 일상이 두렵다. 눈을 뜨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밥을 하고 밥을 먹고 씻고 청소를 하고 그런 일들을 제때 해내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 스웨터의 한 올이 풀린 걸 방치했더니 어느새 옆구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나버린 꼴이다.

그동안 일상에서 너무 많은 의미를 찾으려고 한 탓인지도 모른다.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일상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기분이었고 그런 날들의 반복이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일상은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인 걸 오만하게 간과한 결과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할 것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일단 자야 한다. 그리고 내일은 계란을 사러 갈 수 있다고 힘껏 외쳤다.



*다음 날 계란을 사 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뒤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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