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데이까지 12일이 남았다. 아직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예상보다 아이의 저항이 완강했다. 11월 25일은 대안학교 면접 예정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 공개수업 날, 담임 선생님이 공들여 깎아놓은 단정한 잔디밭 같은 교실에서 홀로 튀어나온 풀처럼 눈에 띄는 아이를 보고 대안학교를 처음 떠올렸다.
그 후 여러 담임선생님을 거치며 아이는 교실에서, 나는 전화로 쏟아지는 지청구를 들어야만 하는 시간을 하릴없이 보냈다.
4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아이를 틀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큰 목소리가 발표에 최적화된 장점이라고 했고 창의적인 생각은 수업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씀하셨다. 3년간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이라고 지적받던 부분을 편견 없이 한 사람의 특질로 바라봐주는 선생님 덕분에 아이도 마침내 학교에 적응을 했다. 더 이상 나도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5학년 때 코로나 시국이 닥쳐 제대로 등교를 하지 못하고 집에서 원격수업 하는 것을 지켜보며 공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들었다. 학교란 어떤 곳인가에 대한 질문을 갖던 터에 우연히 타 도시에서 개최하는 대안학교 설명회를 알게 되어 남편과 함께 찾아가 보았다.
자신의 학교생활을 직접 이야기하러 앞에 나선 학생들이 중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내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각자의 모양대로 스스럼없이 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학교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만 생각했지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다 올해 들어 아이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그 학교가 떠올랐다. 아침에 등교하라고 깨울 때면 ‘알아서 할 테니 내버려 두라’는 잠투정과 어느 날은 ‘왜 깨우지 않았냐’는 타박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이 부모로서 길을 잃은 듯해 답답함이 밀려왔다.
더욱이 휴대폰과 컴퓨터를 향한 애정을 빼면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하고 마는 포노사피엔스가 이대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그려보니 암울해졌다. 그즈음에 예전 그 학교에서 여는 설명회가 가까운 날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안가.”
“학교 설명회는 잠깐 들르는 거야. 광주 놀러 간 김에 구경삼아. 시간도 얼마 안 걸려.”
“흠, 별론데.”
“잠깐만 들렀다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알았어.”
마지못해 승낙하는 아이가 행여나 마음을 바꿀까 봐 남편이 귀신같은 솜씨로 숙소를 예약했다. 1박 2일 주말여행을 가장한 입학설명회 참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