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가.”
설명회가 끝나고 차에 오르며 아이가 누구보다 빠르게 입을 열었다. 눈치만 보고 있던 남편과 나는 일주일 전과 토씨 하나 안 바뀐 대답에 실망했다. 구태여 물어보지 않아도 뭐라고 할지 뻔하지만 이유라도 물어보았다.
“휴대폰을 못 쓰다니, 난 됐어.”
예견했던 일이다. 내 입장에서는 융통성 없는 학교 측이 앞뒤 재지 않고 학교생활에 대해 시시콜콜 알린 덕분에 아이는 엄청난 비밀 (휴대폰 사용 금지, 기숙사 생활)을 알게 되었고 일말의 재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게 됐다.
포노사피엔스로서는 한쪽 팔이 잘린다는 소리일 텐데 거기다 영혼의 동반자나 다름없는 자기 침대마저 빼앗긴다면 양쪽 날개를 한꺼번에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천국행이라 한들 쉽게 동의할 리 없다.
두 마디도 못 꺼내보고 학교 설명회 나들이는 끝이 났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생각은 아니었다. 면접일까지 12일이 남았다. 할 데까지는 해 볼 작정이었다.
김은숙 작가의 옛날 드라마 상속자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왜 안 되는 일인지 내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 백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하는 게 더 쉬우니까.’
드라마 볼 때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말에 치를 떨었는데 저 말이 지금 내게 한줄기 빛과 같은 동아줄이 될 줄이야. 곧바로 유튜브에서 나를 대신해 줄 여러 입들을 물색했다.
장동선 뇌과학자의 세바시 강연–내 인생이 꼬였을 때 오히려 좋은 이유, tvN채널 미래수업의 스마트폰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EBS다큐 공부의 배신, 2028학년도 바뀌는 입시제도에 관한 뉴스 등등.
유튜브 바닷속에는 알짜배기 자원들이 넘쳐났다. 이제 보급도 충분하겠다, 사기충천하여 아이가 하교하기를 기다렸다.
집에 들어오는 아이에게 간식부터 물려 저항을 봉쇄하고 그 틈에 원군들의 입을 풀었다.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하더니 간식이 바닥을 보이자 인내심도 바닥이 났는지 제 방으로 가버렸다.
설득할 시간은 계속 줄어드는데 내속도 모르고 태평한 상대를 보니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좀 더 자극적이고 확실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