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금기시되는 일중에 첫손가락에 꼽히기로 남의 집 자식과 비교하기가 있다. 그 원칙을 나름 잘 지킨 건 우리 집 아이가 학교를 자기 편한 대로 다닌 덕분에 비교할 대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는 아이도,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도, 맞은 개수를 세는 편이 나은 시험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오는 아이도 주변에 없었다.
둘러보면 월등한 상대는 도처에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사촌형 두 명이 대구에서도 힘들기로 유명한 학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제 살벌한 현실의 자를 들이대 아이의 기를 죽일 시간이다.
“너 작은 형아 주말에도 학원에 가는 거 알지?”
그렇잖아도 신성한 절대 자유 시간에 학원에 가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할 마음이라면 너도 이제 그래야 해. 우리는 이미 많이 늦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 할 거야.”
나로서는 회심의 일격이었다. 아이가 절대 받을 리 없는 제안을 하며 마음을 흔들어놓을 계획이었다. 대답 없는 아이에게 여세를 몰아 혼을 쏙 빼놓기로 했다.
“너도 알겠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간다는 건 3년 뒤에 볼 수능 날 하루를 향해 내달린다는 거고 학교 다니는 동안 내신이 네 목을 조일 거야. 시험, 수행평가, 모의고사 이 세트를 6번 돌리고 나면 너의 등급이 매겨지겠지. 1등급, 2등급, 3등급...... 한우에 등급 찍는 것처럼. 너는 그 등급에 맞는 학교와 과를 골라 대학에 갈 테고. 네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도 모른 채 말이야.”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잘 해낼 가능성은 둘째치고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공부에 치어 파김치가 되는 걸, 할 수만 있다면 피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자유인의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한 생활을 아이가 견딜 수 있을까? 아니 견딜 가치가 있는 일일까? 머리가 복잡해 잠시 말을 고르는 찰나에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이제부터 학원 다닐게.”
날벼락같은 말이 동상이몽에 빠져있던 나를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다. 자신의 양 날개를 잃느니 차라리 노예가 되겠다는 엄중한 선포였다.
우리에게 닥친 살벌한 현실을 깨닫지 못한 자는 아이가 아니라 나인 셈이 드러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