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소

by 하유미




일은 전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겁을 주면 마음을 바꿀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의지를 불태울 줄은 몰랐다. 심지어 아이는 내 평생 처음 보는 잽싼 실행력까지 선보였다. 다음날 영어 수학 학원을 알아오더니 바로 등록을 원해 그 길로 학원생활이 시작되었다.

하교 후 곧장 수학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먹고 다시 영어 학원을 가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학원 두 개를 동시에 가야 하는 일주일에 세 번은 그렇게 일과가 고정되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고모가 참전했다. 진학을 앞두고 고민을 하는 우리 부부를 보고 고모가 공부를 시켜보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고모가 누구신가. 학구열 뜨거운 학군에서 조카 둘을 공부시킨 달인이 아니던가.

고모가 만든 공부방(카톡 단체방)에 숙제한 인증샷을 매일 밤 올려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아이가 늑장을 부리는 날엔 어김없이 고모로부터 재촉전화가 걸려왔고 의외로 아이는 싫은 내색 없이 자기 몫을 해내는 눈치였다.

전화를 타고 퍼붓는 집중포화도 아이의 끈질긴 대항전도 둘 다 내가 바란 것이 아니었다. 일은 점점 잘못 흘러가는듯했다.


이대로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제 풀에 지치길 기대했는데 예상 밖으로 아이는 선전하고 있었다.

전략 전면수정이다. 기댈 건 읍소전략뿐이다. 정말 오랜만에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세상이 궁금해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거리던 침흘리개시절, 제 몸만 한 가방을 멘 모습만 봐도 대견하던 유치원생시절, 학교 틀에 맞추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그저 고마웠던 초등학생시절을 회상하며 어느새 훌쩍 커서 작아진 집을 탈피하고 더 큰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사춘기 아이에게 사랑과 감사와 격려의 말을 적었다.

마지막 구절을 쓰면서는 혼자 감정이 격해져 눈물도 훔쳤더랬다.


‘가끔 널 덜 사랑할 수 있으면 고민이 줄어들까 어리석은 상상을 해보지만 매일 널 더 사랑하게 돼. 우리 셋은 항상 세트니까 너의 사춘기를 함께 응원할게. 사랑하는 민기야 파이팅.’


편지를 다 읽은 아이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날 위해 마음을 쓰고 배려해 주는데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하지. 미안해. 아, 정말 미안해. 난 안가.”


눈물 뒤에 감춰진 저의를 간파한 장군은 상대의 작전실패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대인배의 면모마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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