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통을 삭이며 악어의 눈물을 닦았다. 이제는 설득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이판사판이다. 일단 원서만이라도 내보자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제출서류 중에 자기소개서가 있었는데 부루퉁해진 아이가 자기 마음대로 쓸 거라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서류가 통과되면 면접을 봐야 하는데 어차피 숨길 수 없으니까 꾸미지 말고 얄짤없이 쓰라고 했다.
학생뿐만 아니라 부모 역시 짧은 소개 글을 써야 해서 나 역시 열심히 썼다.
[학부모 소개서]
학생의 건강상태
민기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멀미를 합니다.
성장환경
부가 직장을 다니고 모가 육아와 가사를 맡아 함께 키웠습니다. 어린이집을 건너뛰고 5세 때 유치원을 갔고 초등학교까지 잘 다녔습니다.
공교육만으로 학습은 충분하다 생각되어 따로 무언가 가르쳐본 건 별로 없습니다. 사교육은 본인이 재미있어하는 예체능 쪽으로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함께 읽는 습관이 있어 초등 5학년까지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는 휴대폰과 게임에 훨씬 재미를 느껴 책과 담을 쌓고 있습니다.
장단점
장점이 많습니다. 다정하고 밝고 긍정적이고 배려심이 있고 매너 있고 유머 있고 이해심이 있고, 남들보다 앞서 가기보다 남겨진 것들에 마음을 쓰는 성향입니다. 감성이 풍부하고 관찰력이 뛰어나 자신이 느낀 것을 여러 방법으로 표현하기를 즐기고 재능이 있습니다.
단점이라면 가족구성원적인 면에서도 외동이라 부족함을 느껴볼 기회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끝까지 해내는 끈기가 부족합니다.
희망미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스스로와 친한 사람으로 어른이 되어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줄 아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와 관계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가 시작되다 보니 자주 언쟁을 하긴 하지만 아직 대화가 통하고 사과와 화해를 할 줄 압니다. 가족끼리 다 같이 밥을 먹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학교 선택이유
집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생각되었습니다. 부모의 눈과 입을 통해 세상을 보던 유년기가 끝나고 사춘기가 시작된 시점에 또래집단 속에서 친구, 선배, 선생님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스스로 어떤 재능을 찾는다면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고 사회 속에서 더불어 쓸 수 있는 방법도 같이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이란 둥지를 떠나 새 둥지를 찾아가야 한다면, 이곳 지혜학교라면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학부모 소개
부는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50세입니다. 메탈리카의 내한공연에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아재입니다.
모는 결혼 전 학원 강사였고 지금은 전업주부입니다. 46세입니다. 책 읽고 글쓰기를 즐기며 분리수거에 열을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편과 나의 취향을 한 줄씩 적어 넣는 것으로 소개 글을 마무리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솔직하게 쓰기는 아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원서를 접수시키고 누구는 합격통보를, 누구는 정반대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며칠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