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by 하유미



“나,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다고 할 거야.”

“그래, 그래.”


탈탈 털어도 솔직함밖에는 봐줄 게 없는 서류가 통과되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가 왔는데 아이 태도가 비딱한들 자빠진들 어떠냐 싶었다. 마침내 해냈다. 이만하면 이순신 장군께서 12척의 배를 끌고 명량바다에 나아간 심정을 지푸라기 한 올만큼은 이해한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12일간의 긴 전투가 끝이 났다. 시간에 쫓기며 온갖 작전과 술책을 짜내느라 조급했던 마음이 이제야 풀어졌다.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뒷일은 이제 신에게 맡긴다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학생과 부모가 따로 면접을 보았다. 아이가 먼저 들어가 면접을 보고 나오면 학부모가 뒤이어서 앞서 아이와 선생님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질문이 오가는 방식이었다.

선생님들이 내내 먹구름이 껴있는 아이 얼굴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민기가 솔직하고 시크하던데요.”


방금 이 방을 나간 누군가와는 다르게 긴장해서 뻣뻣하게 굳은 막대기 둘을 풀어주려는 농담이 날아왔다.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다 길래 어머니가 기가 센 분인가 싶었는데 그렇다기엔 또 조곤조곤 자기 할 말은 다 하더라고요.”


농담조차 받아치지 못할 정도로 경직된 두 사람이 어떻게 저런 녀석을 소몰이를 해서 이 자리에 왔을까 신기해하는 눈 여섯 개가 우리를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었다.


“민기는 앞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하던데. 영어 수학 과목 같은.”

“지금 중학교 2학년인데 아직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인가요?”


아마 저 말 끝에 붙은 건 의문부호가 아니라 느낌표일 것이다. 가끔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사람들의 반응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네. 며칠 전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차마 대안학교 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평소 교육철학이라든지.”


할 말을 찾지 못한 눈 네 개가 껌뻑거렸다. 남편이 꿀 먹은 척 입 닫기를 선수 치는 바람에 내가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한 교육철학이 있는 건 아니고...... 학교에서 배우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글도 알고 셈도 할 줄 알 길래 그만하면......”

“대단하신데요. 중학교 2학년까지 버티신 거면.”

“저...... 좀...... 터무니없는 말일 수도 있는데......”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드디어 뭔가 제대로 된 말을 하려나보다, 잔뜩 기대하는 눈 여섯 개가 반짝였다.


“어릴 때부터 그냥...... 미더웠어요. 뛰어나진 않아도 자기 나이에 기대하는 사회적 역할은 충분히 해 낼 거라는 아이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습니다. 불안해하지 않았다는 게 다른 학부모와 비교해 보면 좀 다른 점일지도 모르겠어요.”


학업의 길을 좇아가겠다는 아이의 가랑이를 부모가 붙잡고 늘어지는 이 이상한 집의 따로국밥 같은 구성원들을 처음으로 이해하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아닙니다. 결코 터무니없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지요, 어머니.”


아직도 울지 않고 말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탓에 행여 울먹거릴까 봐 내내 살얼음이 껴있던 마음이 여섯 개의 눈이 동시에 짓는 따뜻한 눈웃음에 녹아 흘렀다.




이전 05화학부모 소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