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by 하유미



아이가 독감에 걸렸다.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인데 밤에 찬바람 맞으며 학원을 오간 지 며칠 만에 탈이 났다. 제 딴엔 난생처음 겪어보는 학업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치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뜯어말린 곳을 제 발로 찾아갔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가기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신세가 됐으니 속으로 끙끙 앓다가 몸까지 앓게 된 모양이다.

고열에 시달리다 새벽에 잠이 깨 거실로 걸어 나오는 아이를 발견한 남편이 괜찮은지 상태를 물어보았다.


“아빠, 힘들어. 공부하는 거 너무 힘들어.”


열에 달뜬 목소리로 헛소리를 내뱉고 아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링거 주사를 맞고서야 소생한 아이에게 그날 밤 비밀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런 적 없어. 아파서 힘들다고 한 거야.”


저 정도의 자기 암시를 할 정도면 못 해낼 일이 없겠다 싶었다. 대안학교 가는 것 빼고는.

시골, 전자기기 사용금지, 기숙사 생활, 열악한 시설, 무엇하나 불편하지 않은 것이 없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면접날 한 선생님이 물어보았다.


“보고 느끼셨겠지만 모든 것이 불편합니다. 바로 집 앞 학교를 놔두고 몇 시간씩 고속도로를 달려와야 하는 멀리 떨어진 곳이고, 기숙사에서는 모든 걸 제 손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공교육 학교들에 비하면 시설도 열악하지요. 겨울엔 직접 장작을 패서 난로를 피워야 하고 에어컨도 없어요. 그런데다 교육비도 지불해야 하지요.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드는 교육인데 시키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때는 머리가 얼어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차분히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불편함을 배우러 보내고 싶다고. 이 시기에 경험하는 불편함은 아이 인생에서 아주 가치 있는 자산이 될 거라 믿는다고 말이다.


학교 측에서 2월까지 고민할 시간을 내줬다. 아직까지도 아이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강력한 접착제를 개발하다 엉뚱하게 만들어진 포스트잇처럼 대안학교 입학을 시도한 것이 학업에의 각성이라는 생각지 못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혹시 아이가 학업에 집중하게 만들어보고 싶은 학부모가 있다면 나의 경험을 한 번 이용해 보시라 울며 겨자 먹기로 추천해 본다.


요즘 아이 방을 지나칠 때면 낯선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 침대가 아니라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 앉아서 게임 화면 속 전투에 몰입한 것이 아니라 책을 보고 있는 아이, 그 방에서 들려오는 외계어 같은 영어단어 외우는 소리 등등.

우리 집 포노사피엔스가 저 방에서 탈피를 하고 종잡을 수 없는 낯선 종으로 변한 것만 같다.


전투는 연장전에 들어갔다. 아직 두 달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안타까워만 할 때가 아니다. 아이에 질 세라 새로운 작전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정신적 세뇌, 가스라이팅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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