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요리에 쓴 시간을 다 합치면 일만 시간을 족히 넘긴다. 그럼에도 내 요리 실력은 만 시간의 법칙을 우습게 거스르며 그냥저냥이다. 전혀 밥 해 먹지 않는 사람보다는 낫고 매일 밥 해 먹는 사람치고 어설프다. 평생 세 사람 몫의 식사준비밖에 안 해봐서 일 인분만 양이 늘어도 귀신같이 손이 알고 밥을 태워먹는다.
한정된 메뉴를 돌려가며 우려먹어도 큰 불만이 없는 식구들 덕분에 날마다 뚝딱거리며 음식을 만들 용기가 났고 모양 없이 차려낸 식탁에 둘러앉아 셋이 머리를 맞대고 하는 저녁식사는 내게 하루 중 가장 큰 이벤트였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째이다. 8시에 영어 학원 수업을 마치고 와서 저녁을 먹겠다고 하는 바람에 저녁시간이 어수선해졌다.
이미 6시에 허기져 퇴근해 오는 남편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자연스레 따로 밥을 먹게 되었다. 앞서 남편 먼저 차려주고 나중에 아이 밥상을 한 번 더 차려내고 설거지까지 마치면 9시가 훌쩍 넘는다.
내 밥은 그사이 어디에 끼여 있다. 남편에게 붙었다 아이에게 붙었다 하며 이리저리 먹으면, 누구랑 먹어도 이 빠진 곳처럼 빈자리가 눈에 밟힌다.
소중한 건 잃고 나서 알게 된다더니 매일 모여서 함께 하던 저녁시간이 내게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그 시간을 뺏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문제는 나만 그렇게 느낀다는 거다. 남편은 굶주린 배를 채우는데 급급하고 아이는 혼자 휴대폰을 쥐고 밥을 먹는 걸 더 좋아한다.
게다가 식사 준비를 해서 먹고 치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늘 고정적이었는데 지금은 늘어진 고무줄이 돼버렸다.
눈은 휴대폰에 꽂고 기계적으로 밥을 먹고 있는 아이 앞에 앉았다.
“나 요즘 너무 불행해.”
아이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왜?”
“저녁을 같이 못 먹으니까.”
아,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아이는 다시 휴대폰을 향했다.
멀찍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남편의 고개가 이쪽을 향해 잠시 들리는가 싶다가 도로 내려갔다.
“그래서 말인데, 학원 안 다니면 안 돼?”
아이 입에서 저 말이 나오길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내 입에서 먼저 나오게 될 줄이야. 2월까지 대안학교 입학을 더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고 뭐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지금 내 식탁에 드리운 불행을 당장 치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안 돼. 다닐 거야.”
아이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불행은 어디까지나 각자의 몫인 거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았다.
“엄마가 불행한 건 안 됐어.”
내가 만든 평온한 저녁일상이 주는 행복 한 귀퉁이가 무너졌다. 아이가 벽을 허물고 나간 것이다. 차차 적응이야 하겠지만 갑작스레 뻥 뚫린 구멍을 보고 있자니 서운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