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미 Dec 21. 2023

게으른 자기 계발서

쓸모가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눈꺼풀이 무거운 자의식을 힘겹게 깨우고, 공기보다 가벼운 다짐을 붙들어 맨 다음, 노트북 앞에 육신을 앉히고 겨우겨우 글을 쓴다. 글은 사회를 향해 꺼져있던 통신망을 다시 작동시켜 집안에 고립돼 있던 조난자를 구조하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 일상을 좀먹던 불안감과 패배감이 서서히 줄어들고 비로소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유명한 OTT 드라마 무빙을 봤는데 어느 회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는 나의 쓸모야. 나는 너의 쓸모고.’

이런 감동적인 대사를 들으며 삭막 같은 내 뇌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쓸모가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다.’


40년 넘어 낡은 통신망은 왕왕 소통에 오류가 발생하는데 ‘쓸모’라는 단어에 발끈해 오작동을 일으키더니 곧 정정 신호를 잡는다.

‘사회적 낙제생의 자기변명 나부랭이’


평생 갖고 있는 고질병이 몇 가지 있다. 육체기계가 불량인 것보다 지긋지긋하기로 더한 것은 늘 그림자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내가 잘하는 건 뭘까,라는 생각이었다.

한때 정말, 너무 그걸 찾아보고 싶어서 여러 권의 자기 계발서를 읽어보았다.

게으른 사람, 작심삼일형 인간, 의지가 부족한 이들을 위한 안성맞춤 해결책이 수두룩하게 적혀 있었다. 자투리시간을 쪼개 활용하는 방법, 실천을 습관화하는 방법, 의지를 구체화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 등을 소개하며 책은 도우미가 되어 줄 테니 어서 자기 손을 잡으라고 책장을 흔들어댔다.


그런데 웬걸 읽으면 읽을수록 현대인으로서 나는 구제불능이라는 기분만 뚜렷해졌다. 어떤 환자라도 고쳐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책이었지만 그런 종류의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올리는데 열의가 없거나 의지, 목표달성 같은 단어만으로도 벌써 버거운 사람을 위한 처방전은 없었다. 자아실현 욕구가 높은 독자를 위한 책인데 다른 출발선에 서있는 이들은 독자층에서 제외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돌아보면 나는 아예 다른 경기장에 있는 사람이었다. 재테크를 잘하는 것보다 나무마다 다른 이파리를 구분하는 것을 고차원의 능력으로 꼽았고 어떤 고스펙 커리어보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울지 않고 말하는 품격이 부러웠고, 한 번 배우면 절대 안 까먹는 외국어보다 한 번 가 본 길은 절대 안 까먹는 눈썰미를 익히고 싶었다.

이런 따위의 능력을 높이고 싶은 독자에게 자기 계발서는 맥을 못추었다.


우리(어딘가 있을 동지들에게 내적친밀감을 느끼며 쑥스럽게 우리라고 불러본다.)처럼 자아실현 욕구의 방향이 보편적인 사회적 요구와 어긋나는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좀 게으른 자기 계발서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내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르게 시간이 남아돌기 때문에 시간 관리에 문제가 발생한다.

내게는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안 하면 모레 해도 되는 일투성이다. 늘어난 고무줄 같은 시간에 텐션을 줘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

대표적으로 청소가 그런일에 속하는데 계속 미루다 지쳐 아예 청소하는 요일을 고정했다. 제법 깨끗한데 다음에 할까라는 선택지를 없애고 그냥 정해진 날에는 무조건 한다.

우리 같은 뱁새에게는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져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는 어쨌든 대충이라도 해낼 수 있도록 연구를 하는 편이 낫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계발서가 모두에게 두루 맞기란 어렵다.

외국어를 익히고 몸매를 관리하고 지식을 쌓고 재산을 늘리고 노후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기 계발서는 부지런한 개미형 현대인에게 맞다.

반면 나처럼 게으른 배짱이형 인간에게 알맞은 계발서는 따로 있다.

모두가 옳은 일을 할 때 혼자서 딴짓을 하고 싶다면 남들에게는 헛짓거리일지 몰라도 그 일이 자신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방법은 유일하지 않다. 백 집이면 백 가지 방법이 있게 마련이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는 당연히 우리 집 김치이다.

스스로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보고 나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은 쓸모의 정도를 따지는 현대사회에서도 오히려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자기 계발서는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다는 걸 거듭 상기해 본다.


이런 생각거리를 머릿속에 굴리고 다닐 적에 우연히 강신주 철학자의 장자수업 강의영상을 보게 되었다. ‘제1강 황천 이야기’를 듣다가 ‘무용’의 중요함을 말하는, 장자의 한 단계 더 나아간 ‘쓸모’에 관한 해석이 머리를 퉁하고 쳤다.


‘쓸모가 없어졌을 때 사랑이 증명된다.’


사실 이렇게 진실된 철학의 시선으로 삶을 대하기가 어려운 현대사회이다. 안타깝게도 비뚤어진 세상이든 망가진 세상이든 어쨌든 내가 속한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을 찌우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어떻게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 안간힘을 쓴다.

쓸모가 존재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최소한 ‘존재가 쓸모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내 발밑이 황천길이 되는듯한 기분만은 피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생떽쥐뻬리는 배를 건조하고 싶으면 사람들에게 나무를 모아 오고 준비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에게 끝없는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라고 했다.

온통 맞는 말투성이로 도배된 자기 계발서를 덮고 내가 원하는 삶의 그림을 부단히 상상하고 그려보자.

해야 되는 일이 원하는 일로 바뀌는 마법의 순간이 찾아올 때까지.

장자의 눈을 부릅뜨고 생떽쥐뻬리의 도구를 들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삶을 그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피지기백전불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