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피를 말리는 언쟁이 정점에 달했을 때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다.
과격한 언사와 귀를 찢는 고함으로 무장한 내게 아이는 짜증을 덕지덕지 바른 방패를 들이밀고 ‘강 건너 불구경’ 피켓 시위를 전개했다. 그 꼴을 보고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나는 발바닥에 불이라도 난 듯이 팔짝팔짝 뛰며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적군을 끌어내려 무릎을 꿇리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중이었다.
클라이맥스에서 극적으로 등장한 남편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전세를 뒤바꿔줄 줄 알았는데 반전은 이 중재자가 술 냄새를 풍기며 등장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술에 취한 채 음주단속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찰에게 제대로 된 분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자초지종을 다 듣지도 않고 행여 자기에게 불똥이 튈까 ‘모르쇠’ 카드를 내보이며 안방으로 총총 사라지는 심판의 뒷모습에 할 말을 잃어 멍하니 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원군의 배신에 그만 전의를 크게 상실해 버려 아이를 제 방으로 보내고 상황을 끝냈다. 패전이다. 원군의 간첩 같은 정체마저 까발려진 대패이다.
한바탕 휩쓸고 간 뒤 전장은 조용해졌다. 아이는 제 방에서 맘껏 자유를 누렸고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다. 씻고 나온 남편이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
“미안해. 내가 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둘이 알아서 하라니. 당신은 남이야? 내가 바랐던 게 이런 거 아니냐고? 당신이 안 나서는 거? 어떻게 그렇게 말해!”
“아니, 당신 탓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키웠다는 거지. 우리가”
울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우는 꼴을 보이기 싫어서 이불 안으로 더 꼭꼭 숨었다.
“서운했다면 미안해.”
남편은 이불속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나를 끌어안았다.
“근데 부탁할 게 있어.”
“뭐!”
“나 없을 때 두 번 다시 이런 폭력적인 상황까지는 만들지 마. 절대로.”
“......”
“중2잖아. 아빠가 김밥 한 줄 더 먹었다고 주먹이 나가는 때야.”
“우리가 그 정도 관계는 아니야. 그렇게 키우진 않았어.”
“알지. 그렇지만 그것도 당신 자신감이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남편은 진지하게 나를 걱정했다.
지피지기백전불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중국 전국시대 손무가 쓴 병법서 손자에 나오는 유명한 전술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기고만장해서도 안 되고 상대의 전력과 상황에 대한 파악 없이 무턱대고 덤벼서도 안 됨을 경계하라는 말인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군의 피해가 전혀 없이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오늘 몇 번의 위태로움을 자초했는지 톺아보았다.
사춘기에 사회를 향한 반감을 무럭무럭 키우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그런 비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첫 상대가 부모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이 시기 아이에게 부모가 별로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기다 감쪽같이 증발해 버린 부모의 권위라는 무기를 아직도 휘두를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덤볐으니 지피도 지기도 둘 다 실패한 작전이었다.
하물며 적군은 이 난리 통에 털끝만큼의 일격도 당하지 않았다. 오직 아군만 죽어났으니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는 소모전을 치르며 쓸데없이 진을 뺀 셈이다.
어떤 빅데이터 분석가가 중2의 행동 방향성을 예측하려 든다면 걔네들은 정규분포 밖이나 오차범위 밖에 있는 행동을 끊임없이 해대며 데이터를 오염시켜 전문가를 가볍게 손봐줄 것이다.
그러니 내 잣대로 아이를 이해하려고 머리에 열을 내는 건 정말 무용한 일이다.
그저 오늘처럼 난중일기에 속말을 적으며 훗날 아이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소소하게 기록이나 할 뿐.
남편이 말한 김밥사건을 떠올리며 아까 아이가 내 몫으로 남겨준 초코볼을 입에 넣으니 쓰고 달다.
*참조-지피지기백전불태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