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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Dec 25. 2023

150편 자축 홀로 대담



쓴 글이 50편씩 늘어날 때마다 나의 글쓰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이 어느덧 세 번째이다. 50편 첫 자축 글을 쓸 때는 그저 즐거웠다. 내 글이 차곡차곡 쌓이는 재미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 두 번째, 100편 자축 글을 쓸 때는 아무에게 지지도 않은 글 빚에 대한 심리적 채무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더 잘 쓰고 싶고 꾸준히 쓰려고 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었다.

이제 150편을 썼다. 글쓰기가 마냥 재밌지도 무겁지도 매번 잘 써지지도 꾸준하지도 않다. 그냥 내 브런치 글방의 카테고리처럼 꾸역꾸역 쓰고 있다. 글을 자꾸 쓰면서 자연스레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내가 어떤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인지에 관한 것이다. 오늘은 이 글을 쓰는 이의 글 쓰는 방식을 주제로 ‘알아 둬 봤자 활용성이 떨어지는, 글쓰기에 관한 개인의 특수성으로 점철된 자문자답의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Q : 글감은 어떻게 모으나?


A : 내게 가장 좋은 글감은 자신이다. 전에 고백했듯이 내 글은 상처와 감정 따위를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어 발효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일기에나 적을 속말을 수필이라는 옷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만천하에 까발리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거운 철학은 고사하고 나의 고민과 상처를 확장시켜 누구에겐가 위로가 되는 글을 쓰겠다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철학조차도 별로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Q : 목적 없는 글을 계속 쓰는 이유는?


A : 그럼에도 인터넷상 열린 공간에서 내 이야기를 계속하는 건 집안에서만 운신하고 있는 자신과 사회를 연결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관계에서 도망쳐 혼자만의 시간으로 숨어들 궁리를 해대지만 내 종의 생물학적 한계까지 벗어던지지는 못한다. 고독의 기타를 늘 뚱땅거리면서도 사회적 고립에서 오는 외로움은 엄청나게 무섭다.


Q : 글이 잘 안 써질 때 방안은?


A : 안 쓴다. 다행히 취미로만 글을 쓰기 때문에 마감이란 게 없다. 꾸준히 하는 습관을 들여 글 쓰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개학 전날 몰아서 한 달 치 방학일기를 쓰는 데 단련이 된 입장에서 보면 매일 쓰는 글은 담임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기 위해 쓰는 일기 같이 여겨졌다.

대신 언제든 쓸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준비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얻은 생각거리를 밀대로 이쪽저쪽 밀치고 다니거나 빈 봉지 안의 과자부스러기 같은 감정적 찝찝함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썰어본다거나. 아, 몸을 쓰면 막힌 글이 뚫리는 경우가 있다. 산책이나 가벼운 달리기가 괜찮다.


Q : 글 쓸 때 중요하게 여기는 항목은?


A : 구조와 표현이다.

처음에 구조를 튼튼하게 짜놓으면 헤매지 않고 글을 완성시킬 수 있다. 내 경우엔 머릿속에서 얼개를 짜보는 모의실험을 여러 번 하고 나서 글을 시작하는 편이다. 누구라도 구조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쓸 테니까 비법이라기보다 단순히 순서의 차이라 할 수 있는데 내 경우 책상에 앉은 후 구조를 짜는 게 아니라 머리에서 구조가 그려져야 비로소 앉아서 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표현에 공을 들인다. 상상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직접적인 감정표현을 적어보는 것은 마음정리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내 글에 수필의 옷을 입혀 독자에게 선보이려면 직설적 표현보다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내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화났다’라고 쓰기보다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구겨진 포장지’를 보여 주는 것이 더 생생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감각과 기억을 동원해 지금 감정과 상황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찍을 수 있게 표현하려고 궁리를 많이 한다.


Q : 퇴고는 얼마나 하나?


A : 아주 많이 한다. 내 글을 쓴 직후 읽은 분과 하루 뒤에 읽은 분, 일주일 뒤에 읽은 분, 몇 달 후에 읽은 분이 있다면 각자 완전 다른 느낌의 글을 읽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요령이 없어서 한 편의 글을 쉬지 않고 계속 다듬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작업에 크게 한 번 당하고 난 뒤로 글도 묵은지처럼 익을 시간을 줘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가만히 놔둔다고 노트북에 저장된 글이 절로 맛있어질 리는 없다. 자기 글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초고를 쓰고 한참 묵힌 글을 살펴보려 다시 파일을 열 때면 종종 설렌다. 퇴고를 할수록 점점 모양을 갖춰가는 글은 기다리며 애쓴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


Q : 글쓴이로서 자질이 있다면?


A : 쪼잔한 마음 씀씀이와 별스러운 성미에 입힌 나만의 체취.

대게 모든 일에 그럴 수 있지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글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다. 매사에 어떻게 나한테만 이럴 수 있어, 라며 억울해하고 달고나 떼먹듯이 마음을 조심스레 다루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런 까탈스러운 성미는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감수성을 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괜찮은 일이 내 일상에서는 큰 동요가 되기도 하고 남들에겐 식은 죽 먹기도 내겐 죽을힘을 다해야 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반면 외부 자극에 민감도가 높은 덕분에 세심하게 일상을 건져 올리는 면이 있다. 평생 더위를 타던 남편의 수면양말이 신경 쓰이고, 아이가 내팽개친 가방에서 전해지는 기분을 읽어내기도 한다.

이런 성격적 결함과 치부들이 내 글의 원동력이고 나만의 체취가 배어나는 글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홀로 대담을 마치며


내 글의 1호 팬은 사춘기에 이르러 변심하여 휴대폰 덕질로 갈아탔다. 한편 같이 살지만 내 글방에는 전혀 무관심한 반려자도 있다. 내 입장에서는 나만의 공간이 지켜지는 것 같아서 오히려 고맙다.

반면에 나와 친분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내 글이 재밌어서 글방에 온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거기다 어설픈 글을 무려 구독을 해주신 독자님도 있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200편 글을 쓰고 다시 내 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까지 감사함을 잊지 않고 계속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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