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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Dec 28. 2023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고?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가을부터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는 요가수업을 다니고 있다. 오전 9시 20분 시작인데 겨울이 되니 밤새 체육관 전체가 냉동실처럼 얼어버려서 수업 시작 전 최소 한 시간 정도는 난방기를 돌려 예열을 해야 한다. 그런 사정으로 멀리 사는 요가 선생님이 아침에 한 시간씩 일찍 집을 나선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날 요가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에게 화요일에 일찍 난방을 켜 놓을 테니 수업 시간에 맞춰 편하게 오시라고 말씀을 드린 건 수업조차 들쑥날쑥 참여하는 불량학생으로서는 용기를 낸 것이다.


겨울 아침 이불속에서 꾸물거리는 5분은 얼마나 달고 아까운 시간인가. 그런데 달랑 스위치 하나 켜자고 한 시간 일찍 찬바람을 맞으며 고속도로에 차를 몰아오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만 까마득해졌다. 그런 연유로 이번 겨울 동안 화요일 8시 반에 지하 운동실로 가서 출석버튼을 누르는 임무를 자발적으로 부여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일거리가 된다고 임무라고까지 하는지 과대포장이 질소 충전된 과자봉지 뺨친다 싶겠지만 규칙적으로 일정시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에 압박감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는 변론을 소심하게 해 본다.

차라리 다른 종류의 도움이라면 마음을 내기가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수업이 끝난 뒤 남아서 매트정리나 청소를 맡으라고 했으면 전혀 부담이 없었을 테다.


혹시나 내가 까먹어서 냉골 같은 요가실에서 십여 명이 오들오들 떨며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는 상상만으로도 등골에 식은땀이 난다. 그런 참사를 막아야겠기에 집에 오자마자 알람부터 설정을 했다.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벌써 지난주 일요일 밤부터 화요일에 일어날 참사가 자꾸 예상돼 긴장되기 시작했다. 월요일 내내 열받은 밥솥처럼 압이 차있던 기분은 화요일, 첫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마침내 스르륵 빠져나갔다.


꼽아보면 이런 류의 자잘한 일에 과민 반응할 때가 종종 있다. 신호 없이 불쑥 끼어드는 앞 차량에 식겁할 때도 화내지 않으면서 분리수거장을 엉망으로 만들고 가는 사람 뒤통수를 한참 째려본다든지 하는 것처럼.

음식찌꺼기가 여전히 들러붙어 있는 플라스틱 용기, 테이프를 제거하지 않아 크게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박스, 종량제봉투에 담아내야 할 생활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재활용통에 투기하고 총총 가버리는 뒷모습이 얼마나 얄미운지 눈이 돌아가는 한 오래 흘기기도 한다. 대차게 입바른 소리를 할 강심장이 못돼 눈이 돌아가게 노려보는 걸로 대신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본인에게는 아주 사소해서 신경도 안 쓰이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 모여 큰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무신경함을 못 견디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아파트 도서관에서 몇 년간 봉사를 했었는데 왜 하냐고 묻는 아이에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할 수 있으면 하는 거지.’라고 대답했었다.

내가 타인에게 할 수 있는 배려의 정의가 딱 이 정도인 것 같다. 다정함이나 친근감이 넘쳐서 하는 행동이라기보다 예의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본데 다정한 성격이 아닌데 평소 태도가 상냥하다 보니 오해를 많이 산다. 스스로도 정 많은 사람인 줄 평생 착각하고 산 마당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오죽하겠는가.

아이가 어렸을 때 육아가 너무 버거워서 심리 상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했던 심리검사 결과가 너무나 정곡을 찔렀다.


“오히려 차가운 분이세요.”


그런데 그 말이 너무 따뜻했다. 그동안 타인의 기대시선 속에서 본능적으로 어긋나는 불편함, 태도와 마음의 괴리에서 오는 자괴감등 오랫동안 잘못된 감정들 속에서 표류하던 내게 해방감을 주었다.

그 뒤로는 상대방이 다정한 눈빛으로 한껏 내미는 손을 같이 덥석 마주 잡지 못하고, 한 발짝 떨어져 상냥한 말씨로 손님 보내듯이 인사를 하면서도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않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한 말이 있다. 킹스맨의 명대사, ‘Manners maketh man’.

요즘에 이르러 아이는 이 명제의 ‘이’를 매일 시전하고 있다. ‘매너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 집에 사람 둘과 포노사피엔스 하나가 같이 살게 된 비극의 사연이다.


다정함은 타고 난 성품이고 꾸밀 수 없는 것이지만 태도는 노력으로 갖출 수 있다. 그런 노력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타고난 다정함만이 세상을 구한다고 떠넘기지 말자. 예의 있는 태도와 작은 배려로도 누군가의 세상을 아주 잠깐은 데울 수 있다.

그것이 한 시간 일찍 고속도로를 달려오는 행위의 비효율성에 내가 과몰입을 하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스트레스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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