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론
6-2차. 직관 : 그냥 자연히 그러한 것
직관주의란 더 이상 환원할(근본적인 가치로 돌아갈) 수 없는 여러 개의 제1원칙들의 우선순위를 공정하게 매기는 방법으로 우리의 숙고된 판단(개인의 가치판단)을 택해야 한다는 학설이다.
*직관 : 주관적, 임의적, 다원적
*직관주의는 보다 넓은 의미로는 다원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다원주의 : 개인이나 여러 집단이 기본으로 삼는 원칙이나 목적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
직관주의의 문제점은 상충하는 제1원칙들의 순위를 가려 줄 명확한 방법이나 우선성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직관에 의해서 가장 그럴듯하게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의해서 조정점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인류의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유전자를 타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나에게까지 왔다. 직관은 내 DNA에 아로새겨져 있다.
뱀에게 숱하게 물려 죽은 조상 호모사피엔스 덕분에 나는 뱀을 징그러워하며 꺼리는 직관을 갖게 된 것이다. 한편 뱀을 애완동물로 기르는 사람도 있다. 우스갯소리 같은 예지만 이처럼 직관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이며 임의적이다. 그래서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직관에 기대어 원칙이나 규칙을 정하기가 어렵다.
직관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해 본다.
지각은 뇌의 제어된 환각이라는 설이 있다.(내가 된다는 것-아닐 세스) 지각적 경험 속에 세상의 사물이 나타나는 방식을 뇌가 구축한다는 의미다.
제어된 환각은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강화하려고 진화가 고안한 것이다.
어두운 한밤중 형체가 흐릿한 어두운 색의 털이 북슬북슬한 고릴라를 닮은 무언가를 마주쳤다고 상상해 보자. 내 뇌가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기도 전에 공포감이 먼저 엄습한다. 도심을 활보하는 고릴라를 볼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인지 아닌지 따져보기 전에 몸속 내장기관에서는 아드레날린을 마구 방출해댄다. 그래야 도망칠 수 있다. 실체를 따지지 않고 도망을 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호모사피엔스가 유전자 메시지를 남긴 덕분에 이성적 판단을 내팽개치고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직관이다.
유구한 인류의 진화가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직관주의로 돌아가 보자.
원칙과 규칙이 고정점이 아니라 가장 그럴싸한 직관들의 조정점에 불과하다면 사회는 혼란스러울 듯하다. 엄연히 명문화된 법이라는 확고한 고정점이 있는데도 각자의 입맛에 따라 코에 걸었다 귀에 걸었다 하며 배가 산으로 가기 십상인데, 다초점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어질어질하겠는가.
'더욱이 일상적인 정의관은 관습 및 통념적 기대에 의해서도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관습 자체의 정당성이나 이러한 기대의 타당성은 어떤 규준에 의해 판단될 것인가?
또 고차적인 정책 목표들 간의 우열을 가리는 데 있어서도 직관에 호소'한다면, 정책 결정자의 직관에 따른 판단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우리는 지금 이 사회에서 실시간 목격 중이다.
그러므로 존 롤즈는 우선성 문제를 논함에 있어 직관적인 판단에의 의존을 감소시키고, 정의에 관한 우리의 숙고된 판단들이 합일될 수 있도록 해줄 정의관을 정식화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