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미 Jun 13. 2024

미운오리새끼



정치적 견해는 가족 간에도 밝히지 않는 것이 국룰이다. 더욱이 수 십 년째 자신의 표가 필히 사표가 되는 고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양가를 통틀어 둘만 미운오리새끼인 남편과 나는 유구무언 작전으로 보호색을 쓰고 있다.

오랜 관습은 이해와 설득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깨부수고 타파해야  하는 것인데 미운오리새끼 둘 중 누구도 그런 호전적 기질이 없어 실수로라도 분란을 일으킬 만한 말을 흘리지 않으려고 눈치를 살핀다.


그렇다고 스스로 진보적인 성향이냐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지독한 보수이다. 변화를 싫어하고 시곗바늘 같은 붙박이의 안정감을 훨씬 선호한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삶이 바닥까지 요동칠 때 중심을 잡아줄 닻 정도는 모두의 배에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는 사회라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예전에 어머니의 말씀을 듣다가 우연히 부모세대가 맹목적인 정치적 지지를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엿볼 기회가 있었다. 


“길가에 사람들이 줄지어 누워있었어. 거적을 덮어쓴 사람도 있고, 끝이 없었지. 그땐 어려서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다 시체였던 거야. 배고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그건 일종의 전쟁 트라우마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가 전쟁을 겪은 세대를 이해하려면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처음으로 배고픔을 잊게 해 주었던 시절에 대한 강한 향수가 반세기가 넘도록 계속된 것일 수도 있다.

어릴 적 겪은 전쟁으로 죽음과 굶주림의 공포가 체화된 사람이 무의식 깊이 자리한 기억 때문에 편향된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의 삶 전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부모님은 먹고살만해진 지금도 먹고사는 걱정을 달고 사신다. 본인들이 먹고살만해지니까 이제 자식들 먹고사는 걱정으로 살아간다. 공포가 세월에 닳아 걱정으로 변모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과 미운오리새끼의 정치적 지지 이유가 다르지 않다.

양쪽 다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미래를 원해서이다.

양심껏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가 보장된다고 믿는 쪽과 결과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공정한 사회 절차 속에서 보장되는 것이라고 믿는 쪽의 차이다.

그간 고된 공부를 했던 정의론을 인용해 보면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을 성실히 이용하는 것과 우연성의 차이를 보상해 주는 것에의 관심 차이라 할 수 있겠다.


희한하게도 미운오리새끼 사이에서 까마귀가 태어났다. 까마귀는 자기를 꾸미고 싶어서 다른 새들이 떨어트린 색색의 깃털을 주워 제 몸에 붙인다.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는 까마귀는 언젠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알록달록한 남의 깃털 따위는 털어버리고 자신 고유의 색을 찾을 것이다.


이소를 막 시작한 까마귀를 혼란에 빠트릴만한 일이 조만간 벌어질 모양이다. 도시 얼굴인 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는 정책이 추진 중이라고 한다.

시외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귀갓길, 까마귀는 김대중 컨벤션센터를 출발해 박정희 동상 앞에 도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을 찾는 여정의 매 순간이 흔들리는 것이라지만 까마귀에게 이건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극단의 모순된 간극 앞에서 까마귀가 한마디 내뱉지 않을 수 없다.

까악.





매거진의 이전글 보현산 천문학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