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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n 05. 2024

보현산 천문학자



영천 보현산으로 방향을 잡은 건 우발적 사건이었다. 목에 담이 와서 자라목이 돼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같이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집이 아니라 병원으로 데려가야겠다고 유턴 신호 대기를 하는 중이었다.

눈앞 이정표에 좌회전 방향 영천이 보였다.

 

“영천에나 가볼까? 바람도 쐴 겸.”

“괜찮겠어?”

“어, 당연.”

“그럼, 마감시간 전까지 돌아와서 꼭 진료 보자.”

“어, 뭐.”

 

어떻게든 병원을 안 가고 버티려는 자의 꼼수와 평일 황금 휴일을 그냥 보내기 아쉬운 자의 마음이 맞아떨어졌다.

 

낮 시간 한적한 보현산 댐을 구경하고 나서 이왕 온 김에 근처 천문대도 들러보기로 했다. 갈림길에서 천문과학관과 천문대로 나뉘었다. 우리는 천문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산 입구에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까지 6km라고 찍혔다. 금방 도착하겠다며 가볍게 산등성이에 차바퀴 네 개를 올린 순간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내비게이션이 아까는 꽁꽁 숨겨놓았던 다랑이 논둑 같은 길을 한 굽이 돌 때마다 화면 속에 끊임없이 풀어내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끝날 기미가 없는 좌로 꺾어, 우로 꺾어를 20여 분 돌려댄 끝에 가까스로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편이 입에서 단내가 난다며 창문을 내리자 고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자동차가 발통에 불이 나게 실어 날라준 보람도 없이 막상 천문대는 휑했다. 주변에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 몇 개가 흩어져있었고 작은 단층 건물 하나가 전시관으로 이용되는 듯했다.

한눈에 조망이 될 정도의 작은 규모의 전시관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른 둘이서 동전 한주먹을 중력 우물 실험 장치 속에 던져 넣고 뱅글뱅글 깔때기 속으로 빠져나가는 걸 눈으로 좇고 있자니 싱겁기 짝이 없었다. 동전 떨어지는 걸 구경하다 목이 마른 남편이 무심결에 물통을 꺼내 들었는데 그때까지 우리 말고 사람이라고는 없는 줄 알았던 공간에 낯선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음료 드시면 안 됩니다.”

 

제지를 당해서라기보다 보현산에 오른 뒤로 사람 목소리를 처음 들어 흠칫 놀란 우리는 달 저울에서 내 몸무게가 육분의 일 토막이 나는 걸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서둘러 관람을 마쳤다.

 

“전시는 이게 다인 가요?”

 

입구 구석 자리에 은신하고 있던 목소리의 주인에게 물었다.

 

“별 보러 오셨죠?”

 

우린 딱히 그런 목적이 있어 간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했다.

 

“오실 때 갈림길에서 과학관 쪽으로 가셔야 볼 수 있습니다. 여긴 천문학자들이 거주하는 연구기관이에요. 열 분이면 아홉 분이 잘 못 찾아오시죠.”

 

길을 잘못 든 불청객 둘은 순순히 사라지려고 출입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구에서 오셨다고요? 그럼 대구과학관에서 보시는 게 주민 할인도 받으시고 비용이 더 저렴합니다. 어차피 태양이나 큰 행성을 보는 거면 어디든 비슷해요.”

끄덕끄덕

“보현산 천문대 망원경이 국내 최대이긴 하죠. 처음에 프랑스에서 망원경을 들여올 때 기술자들이 따라와서 여기서 조립을 했는데 글쎄, 완성하고 작동이 안 됐어요. 그래서 다시 분해해서 재조립을 했죠. 기계라고는 생판인 우리나라 천문학자들이 말이에요.”

끄덕끄덕

“올라오실 때 절벽으로 난 길 따라오셨죠? 일부러 그리 길을 냈어요. 그쪽이 남향이거든요. 천문학자들이 출퇴근을 해야 되는데 겨울에 길이 얼어 고립될까 봐 조금이라도 빛이 잘 드는 방향으로 만들다 보니 그 모양이 됐어요.”

끄덕끄덕

“사실 천문대가 산 위에 있는 건 지상에서 발생하는 빛들을 최대한 차단하려고 그런 거예요. 외국처럼 광활한 평지나 사막이 있다면 이렇게 힘겹게 산꼭대기에 만들 필요가 없는 거죠.”

끄덕끄덕

“보현산에 천문대를 만든 것도 당시 여기가 발전 가능성이 희박한 촌이라 생각해서였는데 지금은 빛 방해가 너무 많아졌어요.”

끄덕끄덕

“이런 연구시설들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해요. 기업들은 돈 안 되는 이런 일에 절대 후원하지 않잖아요. 천문학자라는 게 돈이 안 되는 직업입니다. 그렇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별을 볼 때의 감동은 비할 데가 없죠.”

끄덕끄덕

불청객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따위는 이미 관심 밖인 우주 해설자는 태양계를 벗어나 여러 성단과 은하를 돌며 한참을 더 안내한 뒤에야 둘을 놓아주었다.

하도 고개를 끄덕여 절로 도수치료가 된 듯 목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마저 느끼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가시적인 성과가 일생 내 나기 어려운 일, 돈벌이가 전혀 안 되는 일에 매진하며 이렇게나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일을 취미가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생생히 살아내는 사람을 직접 목도하고 나니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확률의 희귀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우리는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부럽다.”

“그러게.”

“여보, 우리 민기는 저런 삶을 살면 좋겠어.”

“어, 근데 천문학자는 공부 많이 해서 된 거잖아.”

“찬물 끼얹지 마.”

 

삶이 모래 지옥에 빠진 듯 무기력하고 우울하다면 보현산 천문대에 올라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거기 눈에 별빛을 반짝이며 몇 시간이고 당신을 행복의 별로 안내해 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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