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읽어본 바로 존 롤즈가 바랐던 사회는 평등한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존 롤즈의 정의관이라 생각된다.
그는 자신의 정의관을 뒷받침해 줄 이론을 사회계약론에서 끌어와 이를 일반화, 추상화시켜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사고실험에서 비롯된다.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무지의 베일 속 평등한 최초 입장에서 권리와 의무, 분배에 관한 원칙에 합의를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무지의 베일이란 원칙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아무도 자연적 사회적 우연성으로 인해 유리하거나 불리해지지 않는 여건을 의미한다.(예, 블라인드 테스트)
*자연적 우연성-신체적 건강, 학습능력, 소질, 성별 등등
*사회적 우연성-지위, 계층, 재산 등등
여기에서 두 가지 원칙이 채택된다.
첫 번째 원칙은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의 할당에 있어 평등할 것.
두 번째 원칙은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 재산과 권력의 불평등을 허용하는 것이 정당하다 이다. 쉽게 말해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디든 건물 입구 가까이 넓은 곳에 장애인 지정 주차구역이 있다. 편한 곳에 주차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똑같은데 우선권을 주는 이유는 뭘까?
사회적 배려라고 답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계약론에서 정의하는 자유는 천부 인권이다. 다른 사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 유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각자가 원하는 장소에 주차를 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 침해가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자유의 또 다른 중요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방종과 같은 무제한적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제한적 자유를 말한다.
그럼 비장애인이 장애인 지정 주차구역에 주차를 하는 것은 장애인의 자유롭게 이동할 자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어떤 개인도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설명했다.
그러므로 장애인 지정 주차구역을 만드는 것은 사회적 배려가 아니라 천부 인권의 지엄한 명령이자 누구라도 평등한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의 실현인 것이다.
사회적 취약 계층의 자유는 종종 인간답게 살 권리, 생활기본권과 직결된다.
얼마 전 가난한 자들이 불량식품을 먹을 자유, 취약노동자들이 주 69시간 일할 자유라는 말이 뜨거운 감자였다.
너의 입장이 나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는 시각으로 보면 불량식품은 먹어서 안 되는 것이고, 주 69시간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하면 안 되는 것을 할 자유는 방종이고 사회는 그렇게 규칙을 어기는 자에게 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지운다.
불법을 정책이랍시고 내세우는 국민의 대리인은 대통령보다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것이 썩 어울릴 테다.
오래전 장자에 관한 책에서 보았던 한 구절이, 그때는 어렴풋이 이해가 됐었는데 이제 명확하게 이해된다.
‘자유 없는 평등은 억압이다. 평등 없는 자유는 방종이다.’
자유와 평등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사회라는 수레가 똑바로 굴러갈 수 있다.
이쯤 되면 만물을 평등하게 대접하라고 했던 장자에게 또 반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존 롤즈의 복지 개념은 평등한 자유로부터 나왔고, 그가 말하는 복지는 배려나 기부 같은 미덕의 영역이 아니라 천부 인권이란 강력한 범주에 속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자는 캠페인을 존 롤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빵점짜리라고 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번영을 위해서 일부가 손해를 입는다는 것은 편리할지는 모르나 정의롭지는 않다. 그러나 불운한 사람의 처지가 그로 인해 더 향상된다면 소수자가 더 큰 이익을 취한다고 해도 부정의한 것은 아니다."-존 롤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