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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l 21. 2020

일리아스(제22권)

헥토르의 죽음



“아폴론의 속임수를 깨달은 아킬레우스는 방향을 돌려 도성으로 달려간다. 성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프리아모스가 헥토르와 자신의 운명과 도시의 앞날을 예견하며 절망에 빠진다. 헥토르는 성벽 밖에서 아킬레우스를 기다린다.
아킬레우스의 사나운 기세에 겁을 먹은 헥토르가 도망친다. 두 사람은 프리아모스의 도시를 세 바퀴나 빠른 걸음으로 돌았고 모든 신들이 이들을 보고 있었다.
제우스가 죽음의 운명 두 개를 저울에 올려놓으니 헥토르의 운명의 날이 기울어져 하데스의 집으로 떨어졌다. 데이포보스의 모습을 한 아테나가 헥토르를 부추겨 추격전을 멈추고 아킬레우스와 창으로 맞서게 한다. 마침내 아킬레우스의 창이 헥토르의 목덜미를 뚫었다. 헥토르가 죽어가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 조심하라! 그대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파리스와 포이보스 아폴론이 스카이아이 문에서 그대를 죽이는 날 나 때문에 그대에게 신들의 노여움이 내리지 않도록.’
아킬레우스는 전차에 헥토르를 매달아 끌고 갔다.
이를 지켜보던 트로이아의 온 백성들이 통곡했다.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가 아들을 잃은 비통함에 울부짖었고 헥토르의 아내는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자신과 아들의 운명을 슬퍼하며 비탄에 빠졌다. “


<독후감>
방향을 돌려 도로 도성 쪽으로 달려오는 아킬레우스를 보며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는 운명을 직감한다.
“그는 마치 늦여름에 떠올라 찬란히 광채를 발하는 별처럼 빛나며 들판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 별을 사람들은 오리온의 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이 별은 가장 찬란하기는 하나 불행의 전조이며 가련한 인간들에게 심한 열병을 안겨준다.”


**막간 별자리 상식**
작은 개 자리 ; 테베의 왕 카드모스의 자손 아크타이온은 자신의 애견을 데리고 사냥을 나섰다. 우연히 여신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화가 난 아르테미스는 그를 사슴으로 변하게 해 버린다. 사냥감을 발견한 개는 자신의 주인인지도 모르고 단숨에 사슴의 목덜미를 물어 숨을 끊는다. 개는 주인에게 칭찬받기를 기다리지만 주인은 이미 죽고 없다.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개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이 별자리의 베타성 고메이사는 ‘눈물 고인 눈’이라는 뜻이 있다.


트로이아의 멸망을 예견한 프리아모스의 탄식에서 전쟁의 민낯을 엿볼 수 있다.
“아들들은 살해되고 딸들은 끌려가 포로가 되고, 방들은 약탈되고 말 못 하는 어린아이들은 무시무시한 결전에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며느리들은 아카이오이족의 잔혹한 손에 끌려가고! 그리고 나 자신은 맨 마지막으로 날고기를 먹는 개들이 대문 앞에서 뜯어먹게 되겠지.”
왕이여, 이러한 참혹함은 비단 당신의 일가만 겪는 일이 아니란 걸 명심하길.
백성들은 더한 고통 속에 전쟁을 치러왔언젠가 전쟁은 끝이 나겠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 폐허가 돼버린 삶의 터전, 전쟁의 광기 속에 잃어버렸던 인간성 등 한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그 삶을 마칠 때에야 비로소 끝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길 바라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기다리며 전에 폴뤼다마스가 트로이아인들을 이끌고 도시로 들어가서 싸움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한다. 헥토르는 마음속으로 갈등한다. 헬레네와 재물들을 돌려주고 이 도시의 모든 것을 양분하자고 아킬레우스를 설득해보고 싶은 마음이 스친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란 것을 깨닫고 맞붙어 싸우기로 결심한다.


원한이란 감정은 어떤 것인가?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대한 원한으로, 자신의 시신을 몸값을 충분히 받고 프리아모스 왕에게 돌려주라는 헥토르의 마지막 부탁을 뿌리친다.
“이 개자식아! 내게 애원하지 마라. 그대의 소행을 생각하면 너무나 분하고 괘씸해서 내 손수 그대의 살을 저며 날로 먹고 싶은 심정이다.”
많은 아카이오이족들은 헥토르의 손에 죽은 친구 또는 친척을 위해 피의 복수에 참여하여 그의 시신을 난자한다.
수많은 생명체 중에 동족을 무자비하게 대량 학살하는 종족은 인간뿐이다.
뿌리 깊은 원한을 대물림하는 종족 또한 인간뿐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중 한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 종족을 청소하듯이 살해하고 살아남은 유일한 인간 종이라는 학설이 있다.
우리의 DNA 속에 각인되어 있을지 모르는 살인의 추억.
이 또한 인간성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책들을 읽을수록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민이 깊어진다.


헥토르는 죽었다. 어쩌면 죽음은 쉽다.
죽음 이후에 남겨진 이들의 삶, 그가 함께 했어야 하는 삶에서 그의 자리가 비어버림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린 그들의 삶은 그럼에도 계속되어야 하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혼절에서 깨어난 헥토르의 아내가 그토록 비탄에 빠진 것은 아버지를 여읜 아들이 안쓰러워서이다. 죽은 자는 하데스의 강물을 건너며 산 자를 잊을 수 있으나 산 자는 죽은 자의 몫까지 떠안고 살아야 하므로 삶은 참 어려운 것이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냥 오늘 하루 내 좋을 대로 살아야겠다.
오늘 저녁에는 가족에게 복숭아 깎아 내주고 남은 뼈다귀나 뜯지 말고 온 거 한 개 깎아서 접시에 담아 나 혼자 다 먹어야겠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마따나 백화점에 가면 5층으로 직행해서 아이 옷 고르지 말고 2층에서 내 옷이나 한 벌 예쁜 걸로 골라봐야겠다.
아들아, 사는 게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 먼저 말고 나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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