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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Jul 17. 2020

일리아스(제21권)

강변에서의 전투



**크산토스(=스카만드로스) : 트로이아 서남쪽의 평야를 흐르는 강.


“마침내 싸움은 소용돌이치는 크산토스의 여울에 이르렀다. 아킬레우스가 수많은 트로이아의 전사들을 죽이고 강물에 떨어뜨렸다. 그중에는 헥토르의 배다른 동생 뤼카온도 있었다. 화가 난 하신이 외친다.
‘내 사랑스러운 물줄기는 시신으로 가득 찼다. 나는 시신에 막혀 흐르는 강물을 신성한 바다로 쏟아 보낼 수 없을 지경인데, 그대는 무자비한 살육을 계속하는구나. 그러니 자, 그만두라. 참으로 놀랍구나, 백성들의 우두머리여!’
강은 황소처럼 울부짖으며 시신들을 뭍으로 내던지고 아킬레우스는 가까스로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도망쳤다. 온 들판은 홍수로 가득 찼고 죽어간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무구들과 시신들이 수없이 떠다녔다.
스카만드로스는 노여움을 거두지 않고 자신의 물결을 더욱 부풀리며 아우 시모에이스를 큰 소리로 불러 함께 아킬레우스를 죽이려고 한다.
이를 지켜보던 헤라가 몹시 염려되어 헤파이스토스에게 크산토스 강변을 따라 나무들을 태우고 하신 자신도 불길에 휩싸이게 하라고 명한다. 순식간에 들판은 모두 마르고 시신들은 화염에 싸였다. 강력한 하신도 화염에 싸여 물이 끓어올랐다. 마침내 하신의 간청으로 헤라가 명해 헤파이스토스가 불을 끄고, 강물은 다시 물줄기를 따라 흘러내려갔다.
신들 사이에서 무섭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테나가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쓰러뜨리고 아르테미스는 헤라를 피해 달아났다.
프리아모스 왕은 백성들이 도성으로 도망쳐 들어오게 성문을 열었다.
아폴론이 아킬레우스를 속여서 강 쪽으로 유인하는 동안 트로이아인들은 성안으로 세차게 쏟아져 들어갔다. “


<독후감>


아킬레우스에게 쓰는 편지


아킬레우스여, 우리 집 아이는 요즘 웹툰에 빠져 있다오. 오늘 아침에도 노트북에 붙어서 금요 웹툰을 정독하고 등교했소. (과제로 받아온 사회 수행 평가지가 백지상태인 건 안중에도 없이.)
아이가 켜놓고 간 노트북 전원을 끄려다 화면을 보고 며칠 전 대화의 의문이 스르르 풀렸소.
“엄마는 손흥민 선수가 잘생겨서 좋은 거야?”
“축구를 잘하고 인성도 좋고 잘생기기까지 하니까 더 좋지.”
“엄마는 BTS멤버들이 잘생겨서 좋은 거야?”
“노래를 잘하고 무대도 멋있고 잘생기기까지 하니까 더 좋은 거지.”
“엄마는 외모지상주의야!”

"!"
그런 어려운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싶었는데 아이가 빠져있는 웹툰 제목을 보니 알겠더이다. ‘외모지상주의’


고금을 막론하고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인가 보오.
그대가 프리아모스 왕의 아들 뤼카온을 죽이며 했던 말을 떠올려 봐도 그렇소.
“자, 친구여! 너도 죽을지어다. 너보다 훨씬 나은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너는 보지 못하는가, 나 또한 얼마나 잘생기고 당당한가? 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고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여신이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그대의 논리대로라면 죽음에도 순서가 있다는 것이지 않소. 못생긴 자, 능력이 부족한 자, 가문이 별 볼일 없는 자는 앞서 죽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단 말이지 않소. 아킬레우스 당신처럼 잘생기고 당당하고 집안 빵빵한 인물도 곧 죽음의 운명이 닥칠 것이기 때문에.


아킬레우스여,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요즘 시대 외모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경우가 더 많소. 무서울 정도로 발전하는 기술의 혜택으로 말이오. 그런 이들은 또 대게 집안의 후광을 덤으로 입고 있소. 그런 인플루언서들이 SNS상에 넘쳐나고 자신의 일상을 과시해대고 부러운 대중들은 마냥 좋아요를 누르지만 속마음이 마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오.
나는 다행히 내 껍데기에 한창 열 올릴 나이에 이런 시대문화를 겪지 않았소. 그래서 요즘 청춘들이 안쓰럽고 안타깝고 그들에게 앞서 산 사람으로서 미안하오.


아킬레우스여,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오. 살아가는 동안도 그렇소. 누구 위, 누구 아래가 어디 있단 말이오. 그대 자신만 해도 헥토르에게 갑질을 당한 걸 누구보다 억울해하고 반기를 들지 않았었소. 그러니 그런 쓸데없는 말들은 다 주워 담고 그냥 한 사람의 전사로 당당하게 뤼카온을 치시오.
그리고 이 시대 청춘들에게도 당당해지라고 말씀 좀 전해주시겠소?
인플루언서들이 휘두르는 돈, 집안 후광에 기죽지 마라고.
행복할 줄 아는 자의 빛나는 외모는 그런 허접한 껍데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우리는 각자의 행복을 찾아내야 하는 운명 속에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라고 말이오.
자신의 내면을 파는 데 써야 할 삽질을 남의 SNS에 가서 쓰지 말기를 바란다고 좀 전해주시오.


추신 : 그대의 시대에는 욕도 참 멋들어지오. 개의 파렴치와 파리의 불굴의 대담성을 합쳐서 ‘개파리’라는 어쩜 그리도 입에 짝짝 붙는 욕을 썼단 말이오. 개파리처럼 살다가는 개파리꼴 난다는 걸 이 시대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소. 욕 한 번 잘 배워서 잘 쓰겠소. 감사를 전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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