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는 정말 그랬을까?
앞에 언급한 바 있듯(4화), 나는 대체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아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랬을까, 나는 정말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까?
어쩌면 불안이라는 감정을 직면하지 못했거나 회피해 버린 건 아닐까?
내가 생각보다 감정적으로 취약한 건 아니었을까?
사실은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안 좋고 힘든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좋은 일만 잘 기억하는 게
어쩌면 회피를 위한 방어기제는 아니었을까?'
여러 생각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심지어 내가 생각했던 나의 정체성까지 의심됐다.
고등학교 때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무리가 있었다.
그들과 친구가 됐고, 주변에서 보기엔 나도 그 무리의 일원이었으나
나는 그들과 섞이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였다.
그건 아마도 내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여자아이들이 함께 화장실을 가는 것이 이상했고,
- 화장실을 가고 싶지 않아도 친구가 가면 같이 가는 -
쇼핑을 가서 서로 옷을 골라주는 것이 편치 않았으며
무엇보다 책이나 영화 취향 등이 맞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니까 나름 내색 없이 함께 했지만
친구들은 나의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것 같다.
보고 싶은 영화는 혼자 보러 다녔고,
쇼핑도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혼자 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나를 뺀 친구들끼리 공유하는 것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다를 떨다 보면 내가 함께 하지 못한 자리, 시간이
구멍처럼 드러났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불안함이 생겼던 것 같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나도 친구들도.
그 불안이나 불만을 수면 위로 꺼내는 순간, 내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혼자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싶었고 회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는 정확이 그것이 어떤 감정인 지 몰랐겠지만.
그렇게 불안을 깊숙이 모른 척 묻어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친구들은 참 착했다.
나를 왕따 시키지도 않았고, 나에게 넌 왜 그러냐 따져 묻는 애도 없었다.
가끔 이상하다는 얘기는 했지만.
'나는 원래 그래, 나는 성향이 그래'
라는 말 뒤에 숨겨두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두 눈 부릅뜨고 살펴봐야겠다.
갱년기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생각도 든다.
"잘 살펴봐, 네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들이 있어
언제까지 외면할래, 이것도 너의 일부고 네가 헤쳐나가야할 것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