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와 카페사장 5

5. 일은 하면 된다 문제는 사람이다 2

by 케이

KBS '궁금한 일요일 장영실쇼'라는 프로그램을 할 때의 일이다.

장영실쇼는 과학토크 프로그램이었고, 분야의 전문가를 섭외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한글날을 즈음해 한글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섭외를 하던 작가가

전화를 붙잡고 울먹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끊은 후 물어보니

대한민국에서 이 분야에선 손꼽히는 저명한 학자였고 명예교수를 역임하던 분을

인터뷰를 위해 섭외하려고 했는데,


그분이

"너는 누구냐, KBS 피디냐, KBS 직원이냐,

어떻게 감히 작가 따위가 나에게 섭외전화를 할 수 있냐"

며 화를 냈다고 한다.

(위 내용은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긴 하나, 내용이나 말투는 저런 식이었다. 아마도 어린 작가가 섭외전화를 한 것에 대해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가끔 그런 분들이 있다.)


전화통화를 하던 어린 작가는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모욕감을 느껴 눈물이 나왔을 것이다.


피디에게 상황을 얘기했고, 우리는 이렇게까지 그분을 인터뷰할 건 아니라는 판단에

더 이상 섭외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송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섭외하는 것이 일이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별별일이 다 있다. (다만 위 사례 같은 일은 흔히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은 밝혀둔다)


특히 탐사보도프로그램(추적 60분, 피디수첩,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의

경우 '잡으면 죽인다'는 협박은 예사다.


상처받고 기분 나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일을 해야 하니 어떻게든 설득하고 구슬리고

아니면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다.


방송을 하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은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과 벌어지는 상황에서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나를 싫어해서 내가 미워서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거다.


그건 그냥

일을 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험한 말을 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나라는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생기는 일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한 후로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서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이 생겼고,

쉽게 화를 내거나 나쁜 기분에 매몰되는 일은 줄어들었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기분 좋은 일도 있지만 기분 나쁜 일, 황당한 일, 어이없는 일이 더 많이 벌어진다.


카페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 카페 커피가 맛없다며 옆집이 더 맛있다는 얘기를 굳이 하고 가는 손님들이 있었다. '맛이 없으면 안 오면 되지 옆집 커피가 맛있으면 그 집을 가면 되지' 왜 굳이 그런 얘기를 하고 가는 걸까 당황스러웠다.

그럴 땐 나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새로 바뀐 카페가 맘에 안 드러나보다고 생각하면 일견 수긍하게 된다.


매번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사람과 상황을 분리하거나, 일과 나라는 개인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모든 걸 뭉뚱그려서 나에 대한 공격이나 비난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는 그냥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나만의 해결책은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P.S : 커피 맛없다고 하고 간 손님 중 몇 분은 현재 우리 카페 단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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