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반복이 처음은 아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무거웠던 손가락이 가벼워졌다. <하루 한 장 나의 표현력을 위한 필사 노트>의 한 페이지에 필사를 하고,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고, 아무 준비 없이 브런치의 빈 페이지를 켜는 일을 일종의 의식처럼 반복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강원국의 글쓰기>에서는 루틴이라고 칭하는, 운동선수나 시험을 앞둔 학생을 예로 들며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 챕터가 있다. 나의 의식은 거창하지 않다. 베껴 적고, 읽고, 키보드를 두들긴다. 글을 적으면서 생각이 정리된다. 맨몸 운동으로 기초를 다진 뒤 바벨을 들 수 있는 것처럼, 정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확실히 일정한 루틴을 유지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큰 에너지를 소모한다. 의지는 쉽게 부풀고 쉽게 꺼진다. 하지만 이걸 견디면 더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초 근육이 생긴다. 기초가 쌓이면 방향이 생겨 막연한 소망이 구체적인 계획이 된다. 계획을 반복해 현실로 만든다.
내게는 반복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영어를 갑자기 잘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10년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단어를 외우고, 말하고, 읽고, 쓰는 일을 반복했다. 그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현재 매일 글을 쓰는 것처럼 같은 방식으로 했다면 더 빠른 시간 내에 영어를 잘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매일'이라는 단어를 감당할만큼 의지가 강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10년은 언어를 배운 시간 뿐만이 아니라 나를 단련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하나를 붙잡고 버티면 결국 성과가 보인다. ‘나이스 투 밋츄’ 한마디도 버거웠던 소녀가 10년 뒤 외국인 친구와 여행을 다니고, 영어를 가르치며 돈을 받게 된 일은 우연이 아니다. 재밌지 않을까- 하며 떠난 유학길에서 울면서 단어를 외우고, 외운 것을 입 밖으로 꺼내겠다고 이를 악문 날들은 분명 나의 선택이었다.
다만 그 선택의 바닥에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엉켜 있었지만 말이다.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는 조급함. 나는 그 조급함을 '열심히', 혹은 '더 잘'의 말로 포장했다. 사실은 창피함에 가까웠다. 뒤처질까 두려운 마음. 그 감정은 괴물이 되어 자만심이라는 탈을 쓰고, 나를 보호하는 척하며 안쪽을 잠식했다. 꼬리를 삼키는 뱀처럼, 스스로를 갉아먹는 방식이었다. 결국 한 번은 무너졌다.
전 글에서 언급한 거미줄의 방은 내가 중학교 때부터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음악 대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하면서, 특별해보이고 싶어서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 살기 시작하면서, 커졌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거미줄이 모두 찢어졌다.
무너졌음에도 나는 다시 일어나는 쪽을 선택했다. 자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지점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유흥거리와 배울 것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나를 알게 되는 여정'이다. 습관을 만드는 것은 그 여정을 빠르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치트키다. 초심을 잃지 않게 해주고, 잃었을 때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게 해준다. 그 사이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고르게 한다. 물론 습관을 만드는 일조차 수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한다. 경험, 명상, 대화, 읽기. 어떤 방식이 맞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는 명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선택지가 많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지금은 다르다.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시간이 오히려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