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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24. 2016

사라지지 마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처음에 동네 유기묘들의 주인을 찾아주면서 시작한 이 일은 이젠 밤마다 해야 하는 부업이 되었다.

절대 그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하루 여덟 시간 근무와 주당 열 시간 내외의

야근, 퇴근, 그리고 고양이들과의 밤뿐이었다.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중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읽다가>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주방 냉장고 앞에 있는 고양이 밥그릇에 물을 새로 바꿔주는 일이다. 자율 급식이 되는 고양이의 사료는 가능하면 그때그때 채워놓기 때문에 물만 갈아주면 된다. 5년째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종은 아메리칸 숏헤어, 아메숏이라고 부른다. 나는 원래 개과(?)여서 결혼하면 웰시코기를 키우고 싶었지만 털이 어마어마하게 빠진다는 이야길 듣고 과감히 포기(근데 고양이가 더 빠진다)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은근슬쩍 고양이는 어때? 라고 묻기에 처음엔 질색하며 싫어했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뭐라도 키워보고 싶은데 개는 아무래도 외로움을 많이 타니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에겐 고양이가 맞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결국 고양이를 선택했다. 신혼 생활 3개월 만에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고 지금까지 쭉 같이 살고 있다. 초반에 끔찍했던 나의 고양이 사랑에 비하면 지금은 50대 중년 부부처럼 데면데면하게 지내고 있다.


고양이, 두 번의 사라짐


이 녀석을 딱 두 번 잃어버렸다. 그중 한 번은 최근, 약 일주일 전이다. 처음 봉봉이를(우리 집 고양이 이름이다) 잃어버린 건 원룸에서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였는데 아마 이사 한 다음날이었을 것이다. 그날은 새로 산 소파랑 장롱을 비롯, 냉장고 세탁기 등이 들어오기로 한 날이어서 현관문을 계속 열어 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튼 봉봉이가 사라졌다. 고양이는 워낙 좁은 구석에 잘 숨어있으니까 짐을 옮기는 동안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잘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가구와 가전제품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봉봉이를 불러보았는데 기척이 없는 거였다. 그때부터 봉봉이를 찾기 위해 온 집안을 양말 뒤집듯 뒤집었으나 꼬리의 털끝도 보이지 않았다. 열린 현관문으로 나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 나는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이 사건을 알리고 봉봉이가 잘 갖고 놀던 방울 달린 낚싯대를 들고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아파트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아마 그게 고양이 장난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미친 여자인 줄 알았을 것이다.)


처음 인사하는 주민은 물론 경비 아저씨께 봉봉이의 털 색깔과 크기 등을 설명하며 이런 고양이 못 보셨느냐고 물었지만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좁은 원룸에 1년 정도 살다가 방이 3개, 앞 뒤 베란다가 있는 넓은 아파트로 옮기면서 봉봉이가 얼마나 좋아할까(그땐 아기가 없었다)를 상상하며 이사했는데 결국 이사를 하자마자 잃어버려서 허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나는 반은 넋이 나간 상태로 밤을 맞이했다. 밤 12시가 넘도록 밥도 못 먹고 결국 봉봉이는 찾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녀석의 변이 섞인 화장실 모래를 들고 남편이 아파트 단지를 돌기 위해 나갔을 때였다.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거실 소파에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냐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제 환청이 들리는구나 싶어서 그냥 눈을 질끈 감았는데, 잠시 후 또 한 번 냐옹~ 하는 게 아닌가. 온 집안을 발칵 뒤집었는데 도대체 이 소리가 어디서 나는가 싶어서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방향으로 따라가 보니 침실 새로 산 장롱 서랍 쪽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서랍을 확 열었고 그 안에서 무려 9시간이 넘게 갇혀 있던 녀석이 후다닥 튀어나왔다. 너무 기쁜 나머지 봉봉이를 얼싸안고 소리 내어 엉엉 울다가 밖에서 사람들 눈을 피해 냄새나는 고양이 모래를 어딘가에 뿌리고 다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봉봉이 찾았어! 엉엉.”
 “어디서?!”
 “서랍에 들어가 있었어, 엉엉.”
겁이 많은 봉봉이는 낯선 사람들이 들락날락하자 옷을 정리하기 위해 내가 열어둔 서랍 안 쪽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정리가 끝났다며 서랍을 닫은 것. 다행히 서랍 뒤쪽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을 공간이 충분했고 녀석은 그 안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무튼 생쑈를 다했지만 고양이를 찾은 기쁨에 새벽 2시에 남편과 라면을 끓여먹으며 자축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게 약 3년 전이다.

illust by 윤지민


그리고 일주일 전, 일요일 밤이었는데 남편이 옥상에 모아둔 봉봉이 화장실 모래를 갖다 버린다고 꽤 오랜 시간 현관문을 열어놨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7, 8차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는데 이 녀석이 이 틈을 이용해 집을 나갔다. 봉봉이가 사라진 걸 그날 밤에도, 아침에도 알지 못했고 월요일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니 늘 나와서 야옹 거리던 녀석이 나오질 않자 그제야 봉봉이를 찾아 나섰고 원래 캔 따는 소리만 나도 부리나케 달려오는데 어떤 기척도 없자 집을 나갔다고 판단한 내가 이번에도 야근 중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봉봉이가 없어졌다고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옛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잘 찾아보라고 했지만 우는 아이를 홀로 두고 집 밖을 나가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이를 돌보며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9시쯤 되어서 욕실에서 아이를 씻기고 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뭔가를 쿵하고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 빼꼼히 내다보니 봉봉이가 보였다.
 “어라? 찾았어? 어디서!?”
 “3층 계단.”
남편은 들어오면서 혹시 몰라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올라왔고 층마다 짐이 쌓여 있는 곳을 뒤졌는데 3층에서 녀석을 발견. 쌓아 놓은 물건 틈에 숨어있던 봉봉이에게 남편이 나와, 하니 순순히 나왔단다. 마치 데리러 오길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해서 봉봉이 가출 사건은 허무하게 종료. 고양이는 밖에 나가면 개와 달리 그대로 바깥 환경에 적응해 버린다고 하여 잃어버리면 더 걱정된다. 개처럼 제 이름을 부른다고 주인에게 오는 고양이도 흔치 않기에 더더욱.


네가 없다고 얼마나 더 행복해질까?



내 주변에 알만한 사람은 알지만 아이를 낳은 뒤 봉봉이에 대한 애정이 전보다 못한 건 사실이다. 주체할 수 없는 털 빠짐도 신경 쓰이고 고양이가 깨끗한 동물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야 지저분하니 청소에 더 예민해지기도 했다. 첫 번째 잃어버렸을 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낯선 환경에서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를 상상하며 하염없이 울었으니까. 그런데 최근 두 번째 잃어버린 날 녀석을 찾기 전 나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고양이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했다. 만약 녀석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내가 고양이 털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받는 걸 아는 남편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이런 상상을 미리 짐작했단다. 봉봉이가 없어졌다는 내 전화 목소리에도 슬픔이 깃들지 않았다나 뭐라나…


좀 더 깔끔해진 공간에서 아이를 자유롭게 키울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이내 그래서 얼마나 더 행복해지겠는가, 로 생각은 좁혀졌다. 물론 찾아서가 아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는 봉봉이 따라다니는 걸 좋아하고 가끔 봉봉이가 제 몸을 아이 다리에 스치기라도 하면 까르르 넘어간다. 고양이 털과 모래 먼지 없는 환경이 아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함께 하는 삶이 정서적으로는 더 풍요로울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여전히 녀석을 구박하고 툴툴대면서 사료를 부어주고 물을 갈아주고 가끔 잔소리를 퍼붓다가 캔을 따겠지만 이제 너무 익숙한 고양이가 있는 우리 집 풍경은 오래도록 바뀌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잊을만하면 너의 존재감을 ‘사라짐’으로 확인시키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양이 봉봉아, 더는 사라지지 마, 그러지 않아도 너는 내게 특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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