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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17. 2016

나이 든 부모와 외출한다는 것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용훈은 깊은 밤의 불 꺼진 창문처럼 까만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 보며 중얼거린다. 
<전아리 ‘어쩌다 이런 가족’을 읽다가>



예전에는 일과 일 사이에 틈이 생기면 뭘 했나 싶을 정도로 요즘은 휴대폰을 본다. 거기에 뭐 대단한 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자주 보게 된다. 얼마 전 지인의 인스타그램을 보는데 개천절에 부모님을 모시고 짧은 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올리고 휴일인지 어버이날인지 모르겠다며 나름의 고충을 길게 늘어놓은 글을 보았다. 그녀의 그런 부담감 잔뜩 묻은 글을 격하게 공감한 나로선 그 사진에 하트를 안 누를 수 없었다. 나 또한 월요일이자 개천절이자 꿀 같은 연휴였던 10월 3일, 아이를 데리고 파주 헤이리 마을에 다녀왔다. 전날인 일요일에는 장마 같은 비가 쏟아져 잠실에 있는 실내 쇼핑몰에 갔다 왔다.


친정엄마는 따로 살지만 거의 매일 본다. 아이를 엄마가 사시는 빌라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맡기기 때문인데 그렇지 않더라도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자주 한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간 다음에도 애기 자냐고 문자하고 저녁은 뭐 먹었냐고 물어본다. 주말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전화한다.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집에서 쉬지 않고 어딜 싸돌아(?) 다니는지. 그래서 어디 외출했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허락 안 받고 밖에 나간 애 마냥 괜히 뜨끔해 전화받기가 싫어진다. 왠지 혼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엄마의 참견이 피곤해

그도 그럴 것이 어디 갔다고 하면 뭐 하러 거길 갔냐, 뭐 샀냐, 또 허튼 데 돈 쓰냐, 뭐 먹었냐, 꼬치꼬치 캐묻는 통에 나도 엄마한테 좋은 투로 말이 나가지 않고 그러면 엄마는 왜 짜증을 내냐부터 시작해서 구구절절한 한풀이가 또 이어진다. 나뿐이면 모른다. 나한테 전화해서 언니는 뭐하는지, 어딜 갔는지 왜 물어보는가! 언니 나이가 마흔 하나다. 그나마 언니랑 엄마는 그렇게 살갑게 친한 사이가 아니래서 나한테 물어보는 거다. 때로는 초등학교 다니는 손주들한테 전화해서 뭐 먹었는지 어딜 갔는지 묻는다. 스토커 수준이다. 가끔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되나! 왜 엄마가 모르는 게 있으면 안 되는 걸까?


illust by 윤지민


엄마한테 스토커니 뭐니 막말(?)을 하고 있지만 내가 엄마의 전화에 늘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다. 엄마는 집에 혼자 있다는 것.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인 엄마의 쓸쓸한 모습 때문이다. 엄마는 애 데리고 파주에 나들이 갔다는 내 말을 듣고 끝내 왜 자기한텐 한 번도 같이 가자고 안 하냐며 결국 서운한 티를 냈다. 마음속에 늘 엄마를 모시고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엄마를 데리고 가면 우리끼리 가는 것보단 피곤할 게 뻔하니까 선뜻 같이 가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엄마 생각이 안 나는 건 아니다. 당연히 난다. 어쩌면 엄마도 이런 말을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기 불편해 돈 쓰지 마라, 바깥 음식 자꾸 사 먹지 마라, 애 감기 드는 데 왜 밖에 나가냐, 등등 잔소리로 에둘러 표현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어딘가 간다는 건 그만큼 제대로 작정을 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 된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자식 생각하는 것만큼 부모를 생각한다면

내 자식은 새로 생긴 키즈카페, 쇼핑센터, 수족관, 좋다고 말이 나온 곳은 어디든 데려가고 싶어 하면서 왜 엄마는 집에 있는 게 편할 거야, 다리 아프다는 데 어딜 가, 라면서 엄마 입장 무시한 채 합리화시켜 버리는지… 난 요즘 내가 그렇게 행동할 때마다 나중에 내 아들도 나를 이렇게 생각하는 날이 올까 싶어 벌써부터 슬퍼진다. 자식 생각하는 것만큼만 부모 생각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어쩔 수 없이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인 건가.


비슷한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거동이 힘드신 반면 친정 엄마는 다행히 건강하셔서 혼자 운전도 하시고 여기저기 원하는 곳은 두루 잘 다니신다. 걸을 수 있을 때 모시고 다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어쨌거나 더 추워지기 전에 친정 엄마 모시고 단풍놀이라도 다녀와야겠다. 부모를 모시고 다닌다고 피곤하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모르면 몰라도 아이 손도 잡아주시고 차 뒷좌석에서 아이를 더 살갑게 챙겨주실지도 모르는데… 나만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럽게 여겨진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내 태도가 확 바뀌진 않겠지만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내 자식 생각하는 거 반만이라도 엄마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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