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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10. 2016

먼저 안녕하세요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세 번째 가방의 옆구리에서 워크맨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어폰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숨을 죽이며 주파수를 맞춘 다음, 들릴락 말락 최저의 볼륨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최저의 볼륨이었나 하면 가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고 그저 음악이 나오는구나 정도를 알 수 있는 ‘쟁쟁쟁쟁’의 연속이었다. 
<박민규 ‘카스텔라’ 중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읽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언니네 간다. 전에는 다 같이 한집에 살기도 했었고 사는 곳이 가까워 평일에는 저녁밥, 주말에는 일주일의 피로를 푸는 조촐한 술자리를 함께할 때가 많다. 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단지 안에 초등학교와 유치원 등 편의시설이 있다 보니 주민들이 이사를 해도 그 안에서 평수만 바꿔가며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언니도 그 단지 안에서만 6년째 사는 중인데 아이들이 크다 보니 평수를 늘려 중간에 딱 한번 이사를 했다. 언니가 그곳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뭘 갖다 줄 일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남학생이 엘리베이터에 먼저 탄 채로 지하에서부터 올라왔고 내가 로비 층에서 합류했다. 그 남학생은 내가 타자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인사를 했다. 나는 살짝 어리둥절한 채로 덩달아 “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인사가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내가 13층을 눌렀고 그는 나보다 더 위층에 사는 학생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다다르자 슬며시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더니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리려 하자 정중하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기까지 하면서 인사를 하다니! 요즘 말로 문화충격이었다. 더군다나 인사 안 하기로 유명한 10대 고등학생 아닌가! 상대방이 인사를 하는데 내가 멀뚱멀뚱 바라만 볼 리 없다. 나도 그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아니 저절로 하게 됐다.


인사가 인색하다

어쨌든 그 아파트 단지 사람들은 인사를 참 잘한다, 아니 인사가 생활화되어 있어 자연스럽다. 꼬맹이부터 연세 지긋한 노인들까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인사한다. 나도 이제 워낙 언니네 자주 놀러 가다 보니 그곳 주민들과 눈만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반면 우리 동네는 어떤가. 작년 요맘때쯤 이사를 하게 된 우리 동네는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신축 빌라를 많이 짓게 된 동네로 그 지역에 오래 살았던 사람보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아파트 같은 단지 구성이 아니라 빌라 한 동 한 동이 다 다르다 보니 하나라는 공동체 느낌은 별로 느낄 수 없다. 심지어 건물 반상회에 나가서도 경계심과 이질감을 느꼈을 정도다. 얼마 전엔 1년 만에 반상회를 나갔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인사가 어색한 게 사실이다. 어른 서너 명이 타면 꽉 찰 것 같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나와 단 둘 뿐이어도 끝까지 인사를 안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숫기 넘치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덩달아 입을 꾹 다물게 됐다. 골목에서 아랫집 사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가 선뜻 나가지 않는다. 서로 고개를 돌리기 바쁘다. 인사에 인색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젊은 사람이고 아무래도 우리 동네는 연세 지긋하신 중년층이 많다 보니 내가 먼저 인사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요즘은 그나마 먼저 하는 편이다.

illust by 윤지민

언니가 살고 있는 동네에선 외부인인 나 조차도 인사가 대수롭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사람은 반드시 내 인사를 반갑게 받아줄 것이다 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들은 늘 미소 짓고 있다. 적대감이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단지 사는 곳의 경제적 수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번은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면서까지 나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한 고등학생 이야길 하면서 언니에게 이 동네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인사를 잘 하냐고 물었더니 워낙 이 단지 내에서 오래 살고 외부로 나가는 사람도 적다 보니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인사를 생활화하는 게 한몫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교육의 의미가 크다는 건데, 가르친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인사를 잘 한다는 게 나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니의 말도 맞지만 어쨌거나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따라 하기 마련이다. 부모가 인사를 잘 하면 당연히 자녀들도 인사를 잘 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그곳 어른들의 솔선수범이 한몫하는 것 아닐까? 인사를 하면 경계심이 줄어든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내 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면 하하 호호 웃음꽃이 피고 피부가 뽀얗네, 귀엽게 생겼네, 등 좋은 말이라도 한 마디씩 더 하게 마련이다.


인사를 받기 위한 인사는 하지 말 것

나도 참 인사 안 하고 살았다. 직장 생활한 지 십 수년이 지났지만 모르긴 몰라도 신입사원 때 인사 잘 안 한다고 뒤에서 말 많았을 것이다. 그땐 왠지 인사 먼저 하면 괜히 지는 것 같고 내가 인사했는데 상대방이 안 받아주면 쪽 팔리니까 아예 안 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서로 쌩까고(?)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고… 이제와 돌이켜 보니 정말 어리석었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인사했는데 안 받아주면 그냥 마는 거지. 그걸 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을까? 요즘은 가능하면 먼저 인사하려고 한다.(이렇게 글까지 썼으니 이제 나는 눈만 마주치면 인사해야 될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건 적건, 나보다 직급이 높건 낮건, 먼저 해야 한다. 이젠 그게 더 좋아 보인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상대방이 인사를 받아주던 말던 인사하는 사람이 더 나아 보인다는 뜻이다. 요즘 내 아이는 툭하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한다.(그건 정말 까딱이다) 할머니, 이모, 엄마, 아빠 할 것 없이 뭐만 했다 하면 고맙습니다, 인사해야지, 라고 시킨다. 아이는 어느 정도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ㅎㅎ) 그 모습마저 귀엽지만. 공부 못해도 예의 바르고 인사 잘 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공부 잘하고 안하무인인 사람처럼 되느니 말이다. 내 아이가 그렇게 자라게 하기 위해선 솔선수범이 중요한 걸 몸소 깨달았으니 나부터 인사 잘 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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