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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04. 2016

쓰는 법을 잊었다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과 노트 그리고 베껴 쓸 책만 있으면 필사를 위한 준비는 끝입니다. 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세 가지 단순한 준비물만 가지고 필사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면 당신은 극단주의자거나 인생의 도를 깨친 사람일 겁니다. 둘 다 속하지 않는다면 필사를 시작할 마음을 먹은 초보자가 틀림없겠죠. 필사가 생활이든 취미든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저 세 가지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낄 테고 번잡한 준비물까지 관심을 두기 마련입니다. 
<조경국의 ‘필사의 기초’를 읽다가>



글씨가 잘 써질까 싶어 부드러운 펜을 샀다. 노트 위에서 너무 잘 미끄러져 오히려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예전처럼 글씨를 잘 쓰고 싶었다. 요즘 나는 내 글씨가 마음에 안 든다, 너무너무.  우연하게 동료와 손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인터넷 서점에서 펜글씨 교본을 주문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지만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팔과 손을 움직여 제대로 써보고 싶은 욕망이 가장 컸다. 키보드를 두드려서 찍는 텍스트가 아니라 반듯한 자세에서 펜을 손에 쥐고 노트에 한 글자씩 써 나아가는 행위. 바르고 정갈하게 또는 스타일리시하게 써 내려간 노트 한 바닥을 보고 쾌감을 느끼고 싶었다.


만들어진 글씨체

5, 6년 전 한창 백종열, 공병각 등 캘리그라퍼의 인기가 시작되던 때 TV 광고며 각종 매체에 손글씨 폰트가 유행이었다. 덩달아 캘리그래피에 대한 욕심이 생겨 주말을 이용해 학원을 다녔다. 당시 내 주 업무이던 편집 디자인에도 잘 녹일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어디 가서 캘리그래피 좀 배웠다라는 이야길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평일엔 직장에 가고 토, 일 아침을 이용해 하루 4시간씩 수업을 듣는 일은 만만치 않은 고행이었다. 어쨌거나 4개월 코스를 끝내고 수료장도 하나 받고 붓이나 펜을 이용해 흉내는 웬만큼 낼 수 있는 수준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요즘은 그때 캘리그래피 배운 것을 후회하고 있다. 당시 배운 필력으로 책도 만들고 웹 페이지나 공모전에도 사용하는 등 여러 콘텐츠에 응용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도 듣고 부러움도 샀지만 지금은 뭔가 나만의 글씨가 없어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나만 쓸 수 있는 글씨체가 사라졌다. 캘리그래피라는 게 글씨를 디자인하는 것이니만큼 노하우를 배우는 거라 그 안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기존에 좀 쓴다 하는 캘리그라퍼의 글씨를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당시에는 그렇게 쓸 줄 아는 사람이 흔치 않다 보니 내가 가진 능력이 돋보였다면 이제는 그 밥에 그 나물처럼 식상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원래 어떻게 글씨를 썼었는지 방법을 잊었다. 캘리그래피와 일반 노트 작성의 필기는 엄연히 다른데 캘리 하듯 노트에 글씨를 '그리다' 보니 뭔가 어설프고 난잡해졌다. 어떻게 봐도 잘 썼다고 할 수 없는 글씨가 적힌 노트를 보면 짜증이 났다. 좀 천천히 차분히 제대로 쓰고 싶은데 손이 먼저 앞서 나가 글씨를 망치고 있었다.


illust by 윤지민


은유 작가의 ‘쓰기의 말들’이란 책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멋있어 보여서, 악기 메고 다니는 게 폼나서, 그림을 그리면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서 시작할 수는 있어도 계속할 수는 없다. 작가로서의 자의식은 어설픈 제스처 차원이 아니다. 외면의 연기를 넘어선 내면의 요청이다.” 결국 나는 어설픈 제스처를 취한 것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시작할 수는 있었지만 계속할 수 없었고 결국 본래 내가 가진 것조차 무너지고 마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처음 연필을 쥔 심정으로

‘겉멋’만 잔뜩 든 글씨. 특히 ‘ㅁ’이나 ‘ㄹ’이 가장 엉망이었다. 이 받침이 캘리그래피를 할 때 가장 멋 낼 수 있는 받침이다. 중학교 때부터 될 수 있는 한 매일 일기를 썼다. 그렇게 쌓인 일기장만 수십 권. 좋아하는 펜으로 소중히 아끼는 일기장에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데 글씨가 잘 써지지 않으면서 일기 쓰는 순간에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글씨가 이상하니 내용도 맘에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요점도 읽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전으로 돌아가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쥐고 가, 나, 다, 라를 쓰는 심정으로 차분히 써 내려가고 싶다. 어떤 배움은 그것을 깨우치지 못했을 때보다 나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배움의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배우는 과정에서 잘못된 인식의 탓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멋을 부리려고 배웠으니 오래가지 못하는 게 당연한 것. 일시적인 멋 부림보다 내 몸에 익은 자연스러움이 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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