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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31. 2016

게으름의 누적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그래서 나는 종종 내 인생을 풀을 먹여 다리미로 주름 한 점 없이 빳빳하게 다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를테면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 같은 고상한 책을 읽고 났을 때처럼. 잡지나 인테리어 서적에서 싱크대 위에 물기 한 점 없고, 제멋대로 널린 아이들의 장난감도 없고, 서랍 속의 옷가지들은 유니클로의 베테랑 점원이라도 다녀간 듯 깔끔하게 개어져 있는 누군가의 집 사진을 보았을 때처럼. 
<한수희 ‘온전히 나답게’를 읽다가>



해야지, 해야지 다짐해 놓고 수개월 째 하지 않은 일이 있다. 다짐하고 생각만 한 게 벌써 4개월은 지난 것 같다. 그러니까 여름 민소매 셔츠를 꺼내 입어야겠다고 생각한 뒤부터인 것 같은데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 부는 가을이 되었으니 나의 귀찮음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계절이 바뀔 만큼 하기 싫은 게 뭐냐, 바로 다림질이다. 그러고 보니 그 다림질 때문에 장롱까지 정리했는데(그 상관관계가 뭐냐 묻는다면, 다림질해서 넣은 셔츠가 구겨지지 않도록 옷장 안의 옷들을 정리했다. 여유 공간을 만들었달까?) 막상 그 어머 어마한 일을 해놓고 정작 다림질은 하지 않았다.


옷을 잘 다려 입지 않는 편이다. 깔끔한 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셔츠는 물론 티셔츠까지 다려 입는다는데 언감생심 나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맘먹고 다림질을 하면 당장 입을 수 있는 옷이 꽤 많은데 다림질이 귀찮다는 이유로 여름 내 그 옷들을 한 번도 입지 못하고 가을이 돼버렸다. 그러면서 입을 게 없다고 연신 쇼핑몰을 기웃거린다. 왜 이렇게 다림질이 귀찮은 걸까. 우리 집에는 일반 다리미와 스팀다리미가 있는데, 생각해 보면 스팀다리미도 일반 다리미 쓰기 귀찮아서 샀던 거였다. 그러니까 바닥에 앉아서 구부정하게 다림질하는 게 싫단 이유로 그냥 걸어 놓고 바로 칙칙 스팀을 쏴서 할 수 있는 스팀다리미를 샀던 건데…(그러면 엄청 자주 옷을 다려 입을 줄 알았다) 이제는 그 스팀다리미도 귀찮아서 쓰지 않고 있다.(스팀다리미는 모자걸이가 되었다) 나는 그냥 다림질이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하기 싫었던 거다. 그러니까 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귀찮은 게 아니라 그냥 하기 싫다

그러고 보니 별거 아닌데 진짜 귀찮아서 하지 않고 있는 사소한 일들이 몇 가지 더 있다. 다림질을 비롯해서 요 커버 씌우기, 거실 테이블 위 정리하기, 선풍기 커버 씌우기, 주방 식기 건조대 닦기 등등이다. 이게 뭐 위치를 바꾸거나 수리를 맡겨야 하거나 그런 일이 절대 아니다. 말 그대로 요는 빨아 놓은 커버를 씌우면 되고 거실에 식탁 겸으로 쓰고 있는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책과 신문, 지로용지 등을 구분하여 정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기 건조대에 남아 있는 물 얼룩을 닦는 것 정도이다. 이 일들이 1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30분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작정하고 하면 5분이면 끝나는 것들인데도 왜 이렇게 하기 싫은 걸까!(아 지긋지긋해) 매일 그 옆을 지나다니면서, 혹은 장롱을 열 때마다 마주치는 모습인데 그냥 눈 질끈 감아 버리고 다음에 하지 뭐, 내일 하지 뭐, 이러고 넘어가 버린다. 나도 정말 나한테 질렸다. 요 커버는 빨아 놓고 씌우기 귀찮아서 그대로 요 위에 깔고 잔다. 엄마랑 같이 살았다면 등짝 스매싱을 여러 대 맞았을 일이다. 빨래하는 것만큼 싫어하는 게 빨래 개는 거다. 개는 것만큼 싫어하는 게 구분 지어 서랍에 넣는 거다. 그래서 매우 종종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를 그대로 걷어입고 나갈 때가 많다. 빨래를 개는 경우는 다음 빨래를 널어야 할 때, 어쩔 수 없이 자리가 필요해서 일 때가 많다. 누가 알아서 좀 해주면 좋으련만 나와 똑같은, 아니 나보다 더 심한 귀차니스트인 내 남편은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하는 경우가 거의 희박해 알아서 해주는 건 진작에 포기했다.

illust by 윤지민


사실 집이 깔끔해 보이고 청소가 노동처럼 느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귀찮지만 소소한 일들을 그때그때 해치우면 된다. 커버를 씌우지 않아 속이 그대로 드러난 요를 매일 밤 깔고 자면 숙제 안 한 것처럼 찝찝한 건 물론이요 커버는 구겨지고 속 이불은 더러워진다. 근데도 왜 안 하는가. 당장의 편함 때문이다. 지금의 편함 때문에 마음속으론 계속 저걸 치워야 하는데, 다려야 하는데, 닦아야 하는데 라며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그곳엔 먼지가 쌓임과 동시에 나의 게으름도 누적되는 것이다. 그렇게 게으름이 누적되다 보면 나는 의례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그냥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뜬금없이 냉장고 생각이 났는데 냉장고도 그렇다. 계속 쌓아두고 (지옥에 가면 내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 다 먹어야 될지도 몰라, 라고 매번 생각하면서) 한꺼번에 청소할 게 아니라 그때그때 날짜 지나 못 먹는 음식은 버리면 몰아서 할 필요도 없고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느끼는 죄책감도 사라질 텐데. 내가 누굴 가르치고 할 처지가 아닌데 말은 참 잘한다.


당장의 편함을 무시하자

어쨌거나 이런 이유로 요즘 내 삶의 모토는 그때그때 하자, 가 되었다. 개수대에 컵이나 접시 한 두 개 모이면 그때그때 설거지하고, 욕실 물때 보이면 바로바로 솔로 닦아내고, 장식장 위에 먼지 쌓였다 싶으면 그때그때 물티슈로라도 닦고, 고양이 털 눈에 띄면 청소기 부담스러우니 정전기 청소포로 대충이라도 미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 번에 많은 힘이 들지 않아도 되고 사실 되게 금방 끝나기 때문에 청소라는 느낌도 별로 없다. 살짝 내가 부지런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 이런 자잘한 것들이 모이면 그것 또한 엄청 피곤하긴 할 것 같다. 계속할 일이 줄 서 있는 기분… 아 어쨌든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별로 하는 것도 없지만 더 격렬하게 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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