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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06. 2016

거기 내 이름은 없었다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시간은 묽은 처럼 흘러갔다
<권여선 ‘안녕 주정뱅이’를 읽다가>




아침 6시 5분에 놓은 휴대폰 알람이 울렸지만 알람을 끄고 5분만 더 자야지, 한 게 눈 떠보니 6시 36분이었다. 우리 회사는 오전 11시 전까지는 지각이 아니다. 자신이 출근한 시간부터 정확히 8시간 후, 그러니까 9시 15분에 출근했으면 6시 15분에 퇴근하면 된다. 어쨌거나 지각은 아니지만 일찍 가면 그만큼 일찍 퇴근할 수 있어서 나는 매일 8시에 출근해 5시 퇴근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날은 내가 늦잠을 잤으니 일단 남편을 깨우고 아이를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보낸 뒤에 출근하기로 했다. 거의 그런 일이 없는데 그날은 알람을 끄고 잠깐 잠든 그 사이에 뒤숭숭한 꿈을 꿨다. 얼마 전 어느 공모전에 글을 냈는데 그날이 발표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나는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끝내 꿈까지 꾸다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날 만큼 말이다.


만만히 보더니 보기 좋게 떨어졌다



솔직히 엄청 기대했다. 내가 그 공모전을 정식 문학 공모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더 그랬던 모양이다. 만만히 본 탓에 보기 좋게 낙방. 이 정도는 참가상이지 라고 생각한 분야별 100명에게 주는 순위에도 들지 못했다. 초반에는 본상을 욕심 냈고 그 뒤로는 가작이나 입선은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수상자 명단에 없었다. 사실 이 공모전은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장장 5개월 이상 준비기간이 있던 공모전이었고 나는 뒤늦게 마감 2주 정도를 남겨놓고 한번 내볼까? 해서 부랴부랴 써서 냈다. 준비기간이 짧았다는 핑계를 대자는 건 아니다. 솔직히 그 공모전을 목표로 준비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평소 꾸준히 글을 써왔기 때문에 그에 못지않은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했다.


출근해서 해당 홈페이지에 접속해 공지사항을 체크하니 아직 발표 전이었다. 두 손을 쓱쓱 비비며 10분 간격으로 해당 사이트를 새로고침 했다. 10시쯤 되어서 수상자 리스트가 떴다. 내 이름은 거기 없었다. 드라마처럼 눈을 몇 번 더 깜박인 뒤 안경을 끼고 다시 리스트를 훑었다. 있는데 안 보일 리 없지 내 이름인데, 역시나 없었다.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마우스를 책상에 쾅, 하고 내리쳤다. (그렇다, 어이없게도 화가 났다) 그러자 조금 정신이 차려졌다. 공모전에 낸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남편에게 결과를 알렸다. 그 또한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농담으로 상금을 타면 사주겠다는 오토바이 때문은 아니리라) 그는 애써 나를 위로했지만 하나도 위로되지 않았다. 끝까지 징징거리는 나에게 그는 받아들이라고, 이것만 보고 몇 개월 달려온 사람도 있는데 너는 아니지 않냐고 일침을 했다. 그러자 수긍이 됐다.


illust by 윤지민


그날 저녁 나와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 친정엄마가 며칠 째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퇴근 후 죽을 좀 사 오란 어명이 떨어졌다. 가뜩이나 그날은 출근을 늦게 해 퇴근이 늦어졌는데 그만큼 친정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늘어 안절부절이었다. 지하철에서 자주 가는 죽집에 미리 전화를 걸어 녹두죽을 주문했다. 15분 후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와 바로 앞에 있는 죽집에 가서 포장된 죽을 받아 들었다. 택시에 올라 타 목적지를 말하고 나니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따뜻한 죽의 온기에 온종일 나를 괴롭혔던 자기기만이 누그러지는 걸 느꼈다.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나보다 나를 더 과대평가하고 살았다. 살면서 거의 실패란 걸 해본 적 없이 적당히 고만고만하게 살아온 탓에 그 안에서만 평가받고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 나은 것뿐인데(사실 나은지도 모르겠다) 대단히 잘난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다. 이게 다 칭찬을 너무 많이 들은 탓이다. 예의상 했을 그 칭찬도 온전히 내가 다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산 탓이다. 그러자 여태 내가 공개적으로 써 온 글들이 모두 창피하게 여겨졌다. 처음엔 화가 나더니 슬슬 쪽팔리기 시작했다.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살았다


소설가 장강명은 공모전에는 상당한 운이 따른다고 했다. 어쨌거나 심사위원이 사람이고 그 사람의 취향과 스타일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지 않은 글이 떨어질 수 있는 건 당연한 결과 아니겠냐고. 그만큼 심사위원과 나의 케미도 중요한 것이다. 물론 여러 사람이 심사를 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이 합의된 시점에 최종 결과가 만들어지겠지만 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맞다고. 그렇다고 내가 운이 없어서 떨어졌다며 상처를 가벼운 반창고로 덮고 싶진 않다. 이게 내 실력이구나, 하고 조금 더 냉정히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된 거다.
글을 내면서 수상에만 집중한 건 아니다. 하나의 글을 완성해서 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고 생각했다. 내 노트북에 끝을 맺지 못한 글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가 써보고 싶은 소재로 완성된 하나의 글을 써봤으니 값진 경험한 건 사실이다. 2만 명 중에 100등 안에도 못 들었다는 사실이 불쑥불쑥 나를 열 받게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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