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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14. 2016

너, 어디까지 솔직해 봤니?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내 담요를 돌려줘.”
더 이상 담요가 필요하지 않은 계절에 미로는 내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자주 가던 찻집에서 만났다. 나는 둘둘 말아 쇼핑백에 담아 온 담요를 미로에게 건네주었다.
 
<정한아 ‘애니’를 읽다가>



그냥 추운 정도가 아니었다. 한겨울에나 불법한 칼바람이 불었다. 전날 일기예보를 보고 단단히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손과 발이 시렸다. 손과 발이 찬 나는 겨울이면 안 그래도 인상도 차가운데 몸까지 완벽하게 찬 여자가 된다. 올 가을 들어 가장 춥다는 11월의 어느 날 서둘러 퇴근을 하고 두꺼운 담요를 둘둘 만 채 소파에 기대앉아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말하는 대로’라는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업종의 유명인이 길거리에 나가 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듣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와서 듣는 방식인 듯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흥미롭게 봤던 ‘마녀사냥’이란 프로를 통해 알게 된 후 책까지 사서 읽었던 칼럼니스트 ‘곽정은’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 성폭력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덤덤하게 털어놓는 중이었다. MC를 포함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입을 떡 벌리며 놀라고 있었다.


저는 어릴 때 맞고 자랐어요

한편, 며칠 전 회사에서 강사(정식 호칭은 ‘안내자’라고 했다)를 초빙해 직원들을 1층 대 회의실에 모여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커다란 눈에 웃으면 반달 눈웃음이 지어지는 지적인 얼굴의 여자 강사는 아담한 키에 내추럴한 분위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호감형이었다. 그런 그녀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대뜸 꺼내 드는 이야기가 자신의 유년시절 부모의 갈등으로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을 한 뒤에는 초등학교 2학년인 자신을 아버지가 상습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는 등의 다소 거침없고 조금은 충격적이며 솔직한 과거발언이었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되겠지만 정말 보이는 대로라면 마음고생 한번 안 해봤을 것처럼 곱고 밝아 보였기에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적잖이 놀랐다.


강의가 끝난 후 솔직한 게 미덕까진 아니더라도 이미지로 갖게 되는 그 사람의 껍데기는 벗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사실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았던 건 아니겠지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라면 치부일 수 있는 상처를 드러냈음에도 매력적인 이유는 소설가 소노 아야코의 말처럼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수용했다는 너그러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그녀가 자신의 아픔을 드러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일 것이다. 고생 한번 안 했을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솔직하게 자신의 쓰라린 과거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저는 어릴 때 맞고 자랐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인간은 당연히 고개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illust by 윤지민


요즘 방송에선 유명인들이 자신의 아픈 곳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찍이 연예인들의 공황장애가 이슈가 되기도 했던 것처럼 방송을 재미있어하고 무대를 즐길 것만 같던 그들에게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이 공포스럽고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들도 똑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공감과 전에 없던 관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예전에는 정신과 치료 기록까지 두려워해 병원 한번 찾지 못하고 쉬쉬했던 연예인들도 이젠 자신의 병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시간을 갖고 휴식을 취하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엔 우스갯소리처럼 병명을 말하며 보호가 필요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근데 그게 눈살 찌푸려진다거나 거슬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솔직함에 마음을 열기도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자신감이 중요

반면 여전히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건 사실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유행하면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즉 아픈 곳보단 즐겁고 행복한 나날만을 공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각기 자신의 삶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기호가 달라지겠지만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밝은 모습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하트를 눌러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그렇게 살고 싶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는 것도 일종의 솔직함이라면 솔직함일 수 있다. 다만 그 지점이 너무 극과 극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울하고 사는 게 괴로운데 남들의 눈만 신경 쓰느라 맛집 사진을 찍어 올리며 ‘맛있는 거 먹으며 오늘도 행복한 하루’ 같은 글을 올려서 하트 수가 올라간다고 한들 껍데기에 불과한 자신의 모습에 얼마만큼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살겠는가.


'상처마저 거름이 되는 삶의 패러독스' 라는 부제를 단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작가 소노 아야코는 ‘자기 행위를 타인에게 평가받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은 버둥거릴 수밖에 없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보내고 있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라고 썼다. 솔직하게 자신의 아픈 곳을 드러낸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보다 내가 우선인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까지 솔직해져야 하는 가에 대한 문제는 각자 알아서 그 선을 정하면 되겠지만 어쨌거나 값비싼 포장지 보단 속이 꽉 찬 알맹이 같은 사람이 되는 게 덜 피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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