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타자기 소리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반복되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 그리고 띵 하고 줄 바뀌는 소리가 났고 다시 탁탁탁탁 소리가 났다. 그렇게 줄이 바뀌고 문장이 바뀌었다. 한 장을 다 치고 종이를 뺄 때면 쉬익 하고 높은 소리가 났고 새 종이로 갈아 끼울 때면 쉭쉭 하는 짧은 소리가 났다. 문학은 저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밤새도록 타자기 소리가 이어졌다.
<샤샤 아랑고 ‘미스터 하이든’을 읽다가>
“그러니까 OO이가 하는 일하고 유미가 하는 일이 어떻게 다른 거야?”
OO이는 외삼촌의 큰 딸로 제품 디자인을 전공해 현재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외삼촌이 나에게 건네는 질문을 들으며 나는 삼촌은 아직도 내가 디자인을 하는 줄 아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사실 남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다. 단박에 질문의 요를 파악한 나는 보쌈을 입에 욱여넣으며,
“삼촌 저 디자인 안 해요. 글 써요, 글.”
“뭐어? 디자인을 안 해? 글을 써?”
나는 너무 큰 보쌈을 입에 넣은 관계로 고개만 끄덕이며 대답하고 있었는데 잠자코 듣고 있던 엄마가 된장찌개를 상위에 올려놓으며 끼어들었다.
“유미 작가야, 작가. 책도 썼잖아!”
“아~ 그랬어? 몰랐네?”
엄마가 나를 작가라 칭하는 건 몇 년 전에 낸 책 ‘사물의 시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럴 수도 있죠 뭐, 라는 뉘앙스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우리 엄마도 최근까지 내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미대를 나와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딸이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 잡지 같은 걸 디자인하는 줄만 아셨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한 지가 5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이런 계통의 일을 하고 있거나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선 딱히 뭘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 힘든 게 내 일이기도 하다.
얼마 전 파비오 볼로의 ‘내가 원하는 시간’을 읽다가 카피라이터인 주인공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쓴 부분을 읽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교회가 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원죄로 얼룩지게 만든 다음 얼룩을 지우는 약을 파는 식이다. 소비는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나는 자꾸 타인의 일상으로 들어간다
어쨌거나 나는 글로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우리 회사는 쇼핑몰이니까.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는 글을 쓰거나 때로는 이미지의 미흡한 점을 보강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소설에 이런 내용도 나온다.
‘우리가 창조해내는 것은 공허함과 불안감이다. 그리고 상품들을 동원해서 그 공허함을 채우고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도 그렇다. 이게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서 구매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글로 사람들의 불안감을 공감해주고 공허함을 달래는데, 손에 잡히는 어떤 제품을 최후에 제시함으로써 물건을 파는 게 최종 목표(?)인 것이다.
얼마간 이런 일을 해오면 자기만의 방식이란 게 생기게 마련인데 나 또한 그런 노하우가 없진 않다. 나는 앞서 말했듯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거기서 쓸 수 있는 말들로 그들을 유혹(?)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관찰하고 이야기를 엿듣는다. 말 그대로 대화를 훔치는 거다.
‘훔친다는 건 창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일의 기본적인 요소다. 나와 니콜라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도 훔쳐오고, 노래에서도 훔쳐오고, 기차 혹은 슈퍼마켓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엿들은 대화에서도 훔쳐온다.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뱀파이어처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피를 빨아들인다. 우연한 말 한마디, 문장 하나, 새로운 개념 하나라도 포착하게 되면 그게 바로 자신들이 원했던 것이라고 떠들어댄다. 반면에 그들은 훔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들을 위해 준비된 하나의 선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파비오 볼로 ‘내가 원하는 시간’ 중에서>
수시로 안테나를 세우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회사에 있지 않아도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그 안테나는 늘 돌아가야 한다. 어쩌다가 버스나 전철, 혹은 택시에서 들은 대화가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가 되거나 어떤 프로젝트를 푸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내가 쓰고자 하는 카피는 주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쓰는 말을 갖고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쓰는 말은 물론 우리 엄마가 쓰는 말, 집 앞 슈퍼마켓 아저씨가 쓰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가 메모해둔 다음 적당한 시점이 오면 갖다 쓴다.
‘야마다 씨는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말을 합니다. 스토리와 관계없는, 불쑥 내뱉는 대사가 좋아요. ‘스웨터는 맨살에 입으면 따끔따끔해’ 같은 대화를 전철 안에서 듣고, 이 대사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서 스토리를 쓴다고 하시더군요.’
<오쿠다 히데오 ‘버라이어티’ 중에서>
오늘 출근길에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버라이어티의 이 문장에 너무 공감한 나는 밑줄을 아주 세게 그어놨는데,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이나 대사 또한 ‘일반인들의 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주 대단한 말이어야 주목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건 매우 일반적이고 흔한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자주 쓰는 말, 나만 썼던 말일 줄 알았는데 그걸 사이트 메인 화면에서 본다고 가정하면 더 집중하고 한 번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직업이면 어떤가,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면 그만이다
현재 나는 29CM에서 글을 쓰고 있다. ‘매여사’처럼 앱에 주기적으로 연재하는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이벤트나 기획전에 들어가는 카피를 쓰기도 하고, 한 해에 한두 번 하는 큰 프로모션의 카피를 쓰거나 몇 가지 고정 메뉴에 들어가는 텍스트를 맡아 수정하기도 한다. 옷도 팔고 신발도 팔고 김치도 파는 사이트에서 글을 써요,라고 하면 그런 직업도 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딱 정의할 수 없는 직종이기에 더 그렇다. 반면 나는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친 글 쓰기가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 걸친 내용으로 글(카피)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내가 하는 일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
몇 해 전 뜬금없이 내가 하는 일을 묻는 글을 재미 삼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었는데 회사 동료가 이런 댓글을 남겨주었다.
‘마음을 흔드는 사람’
나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내 일을 너무 명료하게 짚어준 이 문장을 나는 그 뒤로 프로필에 꼭 쓴다. 의사, 선생님, 화가, 이런 것처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으면 어떤가. 나는 그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