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각은 오후 4시 17분. 살짝 흐렸던 오전이었어서 블라인드를 모두 걷은 창문으로 한껏 뒤로 눕는 듯한 해가 든다. 제법 더워진 날씨 탓에 뒤통수가 따끈해졌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가 4시와 관련된 인상적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낮 4시를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데 또 하나의 시간 표현 가능성(?)을 본 듯했다. 소설에선 오후 4시를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라고 했다. 다 하지 못한 일을 처리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고 나른해져서 하이볼 같은 연한 술이 생각나는. 오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난 오늘 뭐했지? 생각이 드는 그런 시각이 바로 오후 4시라는 거다. 정말 그런가?
시간을 이야기하는 문장이니 당연히 시계 파는 카피에 응용해 봐야겠다. 특히 이런 생활 공감을 이끌어 낼만한 문장은 특별한 기능이 추가되지 않은 제품일수록 좋다. 시계는 시간을 보는 기계다. 그 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는 제품 중에 골랐다. 디자인도 아날로그틱하다. 이런 시계를 설명할 때 보는 이가 시간으로 하여금 공감할만한 내용이라면 제품을 보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날 것이다. 문구가 좋아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거나 결국 사게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자, 이 소설의 문장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어딘가 이국적인 표현이 살짝 걸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감할만한 내용으로 살짝 바꿔주자. 이때 문장의 스타일은 참고하되 내용만 바꿔도 상관없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 보면 오후 4시는 딴생각이 많이 나는 시각이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잠이 무척 쏟아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난 점심 먹은 직후 보단 오후 4, 5시가 더 쥐약이라 애초에 노인처럼 초저녁 잠이 많다는 얘길 농담처럼 하고 다니기도 했다.
거북목이 되어 모니터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자세를 털썩, 하고 의자에 파묻어 보는 시간. 저녁에 뭐 먹을지 궁리하는 시간. 약속 장소를 어디로 정할지 검색해 보는 시간. 이번 주 토요일 친구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떠올려 보는 시간, 그러면서 컴퓨터에 즐겨찾기 해놓은 쇼핑몰에 들어가 보는 시간. 퇴근하려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 보는 시간 등등 생각하려 드니 참 구체적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표현이다. 이렇게 내게 오후 4시는 뭔가를 탁 놓아버리게 되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긴장하게 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디지털시계가 아닌 시곗바늘이 있는 아날로그 방식의 제품을 고른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쓴 카피에서 뭔가 메인과 서브를 나누고 싶다면,
뒤에는 내일이란 표현을 했지만 앞에는 오늘이 아닌 지금이라고 써줬다. 지금도 오늘이다. 약간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를 이용해 보는 거다. 당신의 4시, 라는 타이틀은 구체적인 시간을 어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집중하게 한다. 여기에 분까지 써줘도 문제없다. (예: 당신의 4시 32분) 이런 구체적이고 평이하지 않은 타이틀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하고 들여다보게 된다. 시계는 우리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제품이다. 이렇게 우리가 매일 접하는 상품일수록 공감되는 카피를 쓰기 좋다. 시계를 어필하는 카피라고 해서 타이틀에 ‘OO하는 시계’라고 쓰는 고정적인 멘트는 자제하자. 그 시계로 하여금 얻을 수 있는 가치, 그 시계로 체크할 수 있는 시간이 주는 공감대를 떠올려 보자. 똑같은 제품도 다르게 팔 수 있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