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다음 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비를 썩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장마는 장마 때만이 줄 수 있는 분위기와 운치가 있는 것 같다. 모쪼록 피해가 없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온종일 비는 퍼붓지만 비 한 방울 맞지 않는 집에 콕 박혀 우렁찬 빗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름이지만 긴팔 티셔츠를 꺼내 입는다거나 눅눅한 집에 보일러를 돌리는 등 계절을 거스르는 행위들은 그때만 만날 수 있는 제철 과일처럼 반갑기도 하다. 윤이형 작가의 단편집 ‘러브 레플리카’에 수록된 소설 중 ‘대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종일 빗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따뜻한 물에 머리를 감고 심호흡을 오래 하고 싶었다.
이 한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비 오는 날의 소소한 기쁨이 전해진다.
눅눅한 집 하니까 여름 장마철 곰팡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0여 년 전 딱 1년 동안 회사 앞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었는데 모아 놓은 돈이 얼마 없어 저렴한 전셋집을 찾다 보니 다 쓰러져가는 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하니 마냥 들떴었다) 집이 워낙 오래되고 낡은 데다가 구석으로 들어가 있어 1층이지만 꽤 습했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 장마철을 맞았는데 전까지 아무 이상 없어 보이던 거실 벽에 무섭게 퍼져나가던 곰팡이를 떠올리면 지금도 몸서리가 처질 정도다. 마땅한 공간이 없어 정리함에 넣어뒀던 가죽 가방에 하얗고 푸르게 내려앉은 곰팡이를 물걸레로 씻어내며 여긴 살 데가 못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벽에 뿌리는 곰팡이 제거제도 사보고 물먹는 하마도 잔뜩 갖다 놓고 캐캐 한 냄새를 제거하려 향초도 켜봤지만 한 번도 곰팡이가 생기지 않았던 집처럼 뽀송뽀송해지진 않았다. 그런 곳에 지어진 집은 집을 통째로 드러내 해가 잘 드는 곳에 옮겨놓지 않는 이상 내년 여름이면 곰팡이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루카’를 쓴 윤이형 작가는 이렇게 매번 찾아오는 곰팡이와 결로를 다정한 병이라고 해석했다. 스치듯 읽었을 때는 아,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니 ‘다정한 병’이란 게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 거였을까 궁금해졌다. 어쨌거나 병은 '다정'과 거리가 멀다. 반가운 병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여기서 다정이라고 말한 이유는 우리가 거부하려야 거부할 수 없는 찾아오는 병(?)도 본인이 다시 오게 되는 걸 민망해하며 찾아오는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 또 왔어!’ 이게 아니라 ‘헤헤헤 저 또 왔어요.’가 되는 거다. 얼마 전 들었던 소설 수업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소설은 세상 밖으로 내놓는 순간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그건 세상의 것이다. 즉 읽는 독자의 해석에 맡기는 게 맞는다는 거다. 그러니 다정한 병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 또한 독자인 나의 마음인 거고 그걸 틀리다 맞다 할 수 없는 것.
그래, 온종일 따스한 해가 드는 집으로 이사 갈 수 없는 한 매년 찾아오는 곰팡이를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찾아오고 마는 곰팡이를 다정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렇게 찾아온 곰팡이나 결로를 닦고 칠하면서 내 마음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거야 말로 그때만 할 수 있는 노동일 테니까.
쓰고 보니 굉장히 키치한 구석이 있는 카피다. 어딘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너나 잘하세요’가 떠오르기도 하고. 곰팡이가 생기면 당연히 짜증이 난다. 곰팡이를 보고 상쾌해질 리 없다. 그렇지만 이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으로 인식시켜줌과 동시에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는 듯 걱정을 덜어주는 것 같은 뉘앙스의 카피면 어떨까? 기존에는 곰팡이와 함께 제거! 탈취! 박멸! 같은 대차고 엄청나고 강한 단어들만 써왔다면 다정한 병처럼 찾아온 곰팡이는 조금 달라 보이지 않을까? 그나저나 우리 집 작은 방 천장에도 재작년 장마 때 생긴 결로로 곰팡이가 생겼는데, 이번 주말은 이 다정한 병을 좀 치료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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