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Jul 13. 2017

훈계도 소설처럼

다르게 쓰고 싶은 쇼핑몰 카피라이터의 고군 분투기

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은 ‘아주 사적인 시간’이다. 그 책의 뒷 표지엔 작가의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나에게 있어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끝없는 흥미의 원천이다. 그것도 파란만장한 운명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변해가는, 그런 종류의 드라마가 내 마음을 유혹한다.”


정확히 일치한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과. 파란만장한 운명보다 ‘일상에서 변해가는 드라마’가 바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이다. 다나베 세이코에 대해 잘 모른 채 제목만 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당연히 나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조금 많겠지, 라는 생각으로 작가의 나이를 찾아봤다가 뒷목을 잡고 말았다. 1928년생! 우리 엄마가 1952년생이니까, 그러니까… 우리 엄마보다 몇 살이 많으신 거냐… 아무튼 완전 할머니인 거다. 급하게 계산기 두드려 보니 올해 여든아홉이시다. 근데 이렇게 지금 내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쓴다고!(다나베 세이코는 영화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생각을 젊게 하자, 인생을 젊게 살자!

앞서 말했듯 그녀의 소설은 이런 잔잔한 일상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디테일한 표현, 묘사가 탁월하고 주인공의 심리묘사 등이 뛰어나 매번 읽을 때마다 공감하게 된다. 소설에서 흔히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 때(흔히 말하는 훈계) 멋들어진 표현으로 이건 나만 쓸 수 있어!라는 걸 꼭 보여주려는 듯 어렵게 쓰는 작가들이 있는데, 다나베 세이코는 그런 말조차 일상을 빗대어, 일반적인 표현으로 말하기 때문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오늘 소설 속 문장이 바로 그렇다.



소설 속 문장:
뭐야, 너는 평생 은박 접시 위에 올라앉아 셀로판지에 곱게 싸여 있다 천국으로 직행하고 싶은 거야? 창피한 일, 쑥스러운 일 좀 하는 게 그렇게 겁나? 어딜 찔러도 약점 하나 드러나지 않는 인간이 그리 대단해? 바보! 인생이란 건 두세 달 뒤에는 이미 인생이 아닌 거야. 지금 이 순간만이 인간의 인생이라고!
<다나베 세이코 ‘감상 여행’ 중에서>


그녀의 단편집 ‘감상 여행’의 일부다. 자, 은박 접시 위에 올라 셀로판지에 곱게 싸여 있다 천국으로 직행하고자 했던 사람 손! 눈에 띄고 창피하고 쑥스러운 일은 좀처럼 싫어해서 숨어 사는 거나 다름없이 지내는 하루하루, 재미있을 리 없다. 그런 나에게 일침 하듯 쏘아대는 그녀의 소설 문장은 정말 통쾌하다. 책이지만 나도 모르게 두 손을 허벅지에 붙이고 차려 자세를 취해야 될 것 같다.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이걸로 어떤 상품을 팔 때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어쨌거나 곱게 있다가 천국 가는 게 싫다면 지금 인생을 즐겨라, 모험하라!라는 뜻이니 아웃도어 상품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최종 선택한 상품은 백팩. 문득 드는 아이디어는 소설의 이 대사가 내레이션처럼 흘러도 참 멋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떤 텍스트는 보이는 것보다 귀로 들을 때 더 또렷이 기억되기 때문이다. 설거지하다가 우연히 들리는 광고 내레이션이 좋았던 적, 한 번쯤 있지 않나?



카피(내레이션):


평생 은박 접시 위에 올라앉아 셀로판지에 곱게 싸인 채
천국으로 직행하고 싶은 인생이 아니라면,


창피하고 쑥스러운 일쯤 겁나지 않고,


어딜 찔러도 약점 하나 드러나지 않는 인간이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진짜 인생이란 건 두세 달 뒤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 걸 알았다면,


주저 말고 떠나자. 


소설 속 문장으로 카피를 만든다고 할 때 있는 그대로 갖다 쓸 수도 있겠지만(당연히 법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자기 스타일대로 응용해 보는 게 좋고 그러지 못한다면 문장을 재정비해서 조사를 바꿔 뉘앙스를 달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오늘 예로 든 소설의 문장을 하나의 광고 내레이션으로 바꾼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방법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갖고 연습해 보는 게 중요하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소설도 읽으면서 자신이 쓰고자 하는 카피를 새롭게 쓸 수 있는 게 최종 목표니까. 글 쓰기 실력은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 카피도 마찬가지다. 좋은 카피를 많이 찾아 보고 생활 속 다양한 문장으로 접목해 보며 연습할 때 자신만의 스킬이 생기는 것이다. 그전에 해야 할 것이라면 책을, 소설을 많이 읽는 것이다. 차곡차곡 쌓듯이 독서하며 자신만의 무기를 쟁여놓는 것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카피, 그걸 만들어야 한다.


*글에서 언급된 상품은 에디터 개인의 선택으로

해당 브랜드나 담당 엠디의 추천과는 무관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곰팡이,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