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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02. 2017

온탕 한가운데서 시원함을 외치다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감기에 된통 걸렸다. 눈은 뜨겁고 머리는 무겁고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지난 토요일엔 아예 못 일어나고 일요일에는 좀 추슬러서 목욕탕에 갔다. 옛날부터 아프면 뜨끈한 욕조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했다. 땀을 쭉 빼면 괜히 낫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씻고 싶을 땐 아무래도 집에서 씻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대중목욕탕을 찾는다. 이사 온 지 2년이 지났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속 전에 살던 동네로 목욕탕을 다녔다. 차로 20분은 족히 가야 하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다니기도 했고 그곳 세신사 이모님께 오래도록 몸을 맡긴 터라 알아서 잘 해주시기 때문이기도 했다. (낯선 곳에 가길 참 싫어하는 나다) 이번에는 동네 목욕탕을 뚫어보기로 했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목욕탕’이라고 치고 가까운 거리를 찾아보니 2킬로미터 지점에 대중목욕탕이 검색됐다. 아이와 남편이 낮잠 자는 틈을 이용해 세탁기를 돌려놓고 목욕가방을 챙겼다. 일인용 방석과 샴푸, 바디클렌저, 때수건 등등을 담았다. 차로 7분 정도 달리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엄청난 시간 절약을 한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씻고 나면 있는 병도 좀 낫는 것 같다 

몸이 아플 때 가장 하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씻는 것이다. 아픈 사람은 씻기 힘들다. 그래서 못 씻으면 더 아프다. (왠지 그렇게 느껴진다) 씻고 나면 개운해져서 있는 병도 좀 낫는 것 같지 않던가? 나 또한 아프면 씻는 것부터 건너뛴다. 세수는 물론 양치질도 넘어간다. 그렇게 온종일 끙끙거리다가 저녁때가 돼서야 기운을 좀 차리고 가장 먼저 머리를 감고 몸을 미지근한 물에 씻는다. 옛날부터 죽을 날이 임박한 사람은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한다고 했는데 씻는 것도 그에 포함된단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는 기운도 없는데 새벽부터 난데없이 목욕을 하셨다. 그러곤 막내 고모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 병문안을 가자고 엄마를 재촉했다. 엄마는 갑자기 몸을 깨끗이 씻고 나선 아빠가 좀 이상했지만 집 밖에 나서기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아빠를 차에 태워 병문안을 갔다. 그렇게 갔던 병원에서 아빠는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면서 엄마는 줄곧 이야기했다. 갑자기 목욕한 게 이상했다고. 그러고 보면 사람은 정말 자기가 죽을 때를 예감하는 걸까?

illust by 이영채

지금은 누가 가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목욕을 가지만 어릴 땐 엄마가 목욕 가자고 하는 게 제일 두려운 것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 게 엄마가 때를 밀어줬고 밀 때마다 아픈 건 물론이요 때가 많다고 면박을 주었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가장 많이 듣던 말 중 하나는 “너는 밥 먹고 때만 만드냐?”였다. 몸집도 작고 여린데 때가 엄청 많았나 보다. 근데 어른이 되어서도 친한 세신사 이모에게 내 별명은 ‘때순이’다. 아주머니는 그런 내가 좋다고 했다. 때를 밀 때 때가 안 나오는 것보다 많이 나오는 게 오히려 편하단다. 얼마 전에는 평일 퇴근 후 목욕탕에 갔던 터라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때를 밀었는데 세신사 이모가 평소보다 2배로 꼼꼼히 밀어주시는 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거 참 재밌네. 밀어도 밀어도 나와. 하하” 나는 민망했지만 아주머니는 무슨 미션 수행하는 사람처럼 땀을 뻘뻘 흘리시며 때를 미셨다. 다 끝낸 뒤에 그냥 맨 마지막이라 더 꼼꼼히 밀어줬다 길래 나오는 길에 박카스 한 병을 따드렸다. 


어느새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시원함을 말하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 동네 목욕탕 세신 비용은 2만 원이다. 내가 쓰는 돈 중 안 아까운 몇 안 되는 목록 중에 때 미는 값도 포함된다. 2만 원이 되기 전까지 몇 년 동안 1만 칠천 원이었는데, 세신 비용은 아무리 올라도 군말 없이 지불할 것 같다. 차라리 다른 것에서 돈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만큼 그 개운함과 편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온몸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맨 마지막에 간단히 해주는 마사지 또한 매력적이다. 뜨거운 수건을 어깨와 허리에 덮고 무심한 듯 시원한 손길로 툭툭 쳐줄 땐 으으, 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세신사 이모는 쿨내 진동하는 당연한 한마디도 빼먹지 않는다. 


“어깨가 많이 뭉쳤네! 자세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다시 어릴 적 이야기로 돌아가서, 엄마는 목욕이 끝나면 반드시 가나 초콜릿 우유를 사주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때 마셨던 그 쵸코 우유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그 맛이 절대 나지 않는다. 희한하게도 그 우유 맛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나는 어느 순간 엄마와 함께가 아닌 혼자 목욕을 나서는 나이가 됐다. 아들을 낳고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대중목욕탕에 함께 갈 수 없는 거였다. 성별을 알기 전 가끔은 내 등을 밀어주는 딸을 상상하기도 했으니까. 그나저나 꾸물거리는 날씨 탓에 반차 내고 목욕탕에 가서 뜨끈한 온탕에 목까지 푹 담그고 싶기만 하다. 참 시원할 텐데.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시원함을 찾는 나도 세월은 어쩔 도리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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