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파바박!

설명서 대신 읽는 소설

by 이유미

덕분에 저는 자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어요. 우린 더 이상 불꽃 튀기진(?) 않게 되었지만 사이는 더 각별해졌습니다.




제 여자 친구 이름은 한겨울이에요. 겨울을 무척 좋아하는 그녀의 부모님이 처음으로 의견 차이 없이 단번에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겨울이 좋았으면 자식 이름을 ‘그냥’ 겨울이라고 지었을까요? 정작 겨울이는 겨울을 가장 싫어하는데요. 아니 싫어’했다’고 할 수 있겠죠. 과거형. 나의 여자 친구 겨울이가 겨울을 싫어하게 된 이유는 별게 아닙니다. 그녀는 열이 많아 여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겨울이가 겨울이 싫은 이유는 바로 정전기 때문입니다. 2년 전 사내 독서모임에 나갔다가 처음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첫 모임에서 그녀와 아주 잠깐 옷깃을 스쳤을 때 불꽃이(그건 정말 불꽃에 가까웠어요) 파바박 튀는 걸 보고 내가 이 여자를 대체 얼마나 맘에 들어하는 건가, 싶은 충격에 휩싸일 뻔했으니까요. 사랑의 콩깍지가 씌었던 나는 그게 정전기 때문이 아니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머리에 종이 울린다는 것처럼 불꽃이 튀는 건 줄 알았거든요.


네, 맞습니다. 그건 말 그대로 정전기였어요. 겨울이는 정전기 때문에 겨울을 싫어했습니다. 보통사람보다 두 배는 심한 그녀의 곱슬 머리카락이 과한 정전기에 한몫했죠. 그녀를 만나기 전엔 각종 섬유 유연제로 중무장을 하고 나가지만 여지없이 정전기는 발생하더군요. 문제는 앞서 말했듯 그녀의 곱슬머리였습니다. 긴 곱슬머리를 가진 그녀가 머리를 묶으면 덜 할 테지만 스스로 얼굴이 크다고 믿는 그녀는 늘 머리카락을 풀고 다니기 때문에 정전기의 늪에서 해방 되질 못하죠. 트리트먼트를 써봐도 정전기는 어느 정도 줄어들기만 할 뿐 없어지진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시로 머리카락을 빗어대기 때문이었죠. 정전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연애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지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날은 우리 두 사람, 멀찍이 떨어져서 걸을 때도 있었어요. 그날 제가 어떤 옷을 입고 오느냐에 따라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정전기 때문에 손조차 잡을 수 없었던 저는, 여자 친구의 머리카락 쓸어주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저는, 도저히 이대로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지내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 오빠 지금 나랑 헤어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겨울이는 이대로 지낼 수 없다는 나의 통보에 발끈하고 나섰습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뭐?”

“근데 왜 화를 내고 그래. 내 말 잘 들어봐. 내가 며칠 전부터 뭘 좀 찾아보고 있어.”

“그게 뭔데?”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튼 정전기를 막을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아.”

“설마 나더러 머리카락 자르라는 건 아니지? 오빠, 나 머리 절대 안 잘라!”

“누가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했다고 그래. 좀 기다려봐. 방도가 있겠지.”


해결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사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단 마음만 간절했어요.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 저녁 겨울이의 세미나 출장으로 데이트가 없던 날이었습니다. 모처럼 식구들과 삼겹살로 저녁을 먹고 심심해서 인터넷으로 여기저기를 떠돌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어요. 혹시 그런 말 아세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열렬히 바라면 우주가 날 도와준다. 제가 말해놓고도 너무 거창했네요. 아무튼 생각 없이 클릭에 클릭을 이어가던 찰나 마치 신의 계시처럼 그 물건을 만나게 된 겁니다. 사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어요. 진짜 효과가 있을까 싶은 의심을 잔뜩 품었죠. 겪어보기 전엔 모르는 거잖아요. 물건은 겨울이가 세미나에서 돌아온 월요일 절묘한 타이밍에 도착했습니다. 출장으로 며칠 만에 만나는 터라 퇴근 후 회사 앞에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 우리는 자주 가는 일식집에 자리를 잡자마자 이 물건부터 테스트해보기로 했습니다.


“자, 빗어봐.”

“빗어보라고?”

“응. 여기 이 부드러운 부분은 에어쿠션이고 항균 기능이 있는 백금 브러시 핀 때문에 정전기랑 머리 엉킴을 막아준대.”

“오빠. 내가 가진 노력 다 해봤어. 안 되는 거 몰라? 왜 또 쓸데없는 데 돈을 썼어?”

순간 겨울이에게 빗을 팔기 위해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꼴이 되었지만 상관없었어요. 우리 사이에 정전기만 없어진다면야.


겨울이는 빗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시도해 보려고도 안 했습니다. 답답해진 저는 진동을 켜고 그녀의 구불거리는 곱슬머리를 빗기 시작했어요. 귀찮다며 손사래를 치던 겨울이가 순간 동작을 멈췄습니다. 이거 뭐야? 하는 표정이었어요. 두피에서부터 끝까지 한 번에 빗긴 적 없던 그녀의 곱슬 머리카락이 한 번에 쭉 빗기는 거였습니다. 겨울이는 빗을 내 손에서 빼앗아 스스로 빗기 시작했어요. 순간 저희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전기. 정전기가 안 생겨!”

거짓말처럼 우리 두 사람 사이엔 정전기가 생기지 않았어요.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진동이 되는데 이게 분당 6000번이래. 1000번도 아니고 무려 6000번. 이 진동이 두피랑 모발을 마사지해준다는 거지. 그래서 당연히 부드럽게 잘 빗기는 거고.”

겨울이는 빗을 제 두피에 누르듯 대보았습니다. 시원한지 입이 살짝 벌어지더라고요.


우리는 초밥이 나오는 것도 모르고 진동 브러시 삼매경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겨울이는 핸드폰은 놓고 다녀도 진동 빗은 잊지 않고 챙겼어요. 정전기 방지와 더불어 부드러워진 그녀의 머릿결은 보너스 같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자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어요. 우린 더 이상 불꽃 튀기진(?) 않게 되었지만 사이는 더 각별해졌습니다. 겨울이는 저의 세심함에 반했다고 했어요. 겨울을 싫어하던 겨울이는 드디어 겨울에 더 따뜻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끝.


<전동 브러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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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노블은 어려운 설명서를 잘 읽지 못하는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연재물입니다.

어려운 설명서, 복잡한 구매 후기 읽기보다 짧은 소설 한 편으로 제품이 이해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현재 29CM 앱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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