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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Dec 02. 2017

다음 임무까지 쉬어!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얼굴에 팩을 하고 술을 마시면서 아이패드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아이폰으로는 트위터를 한다’와 같이 3~4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장면이 휴식으로 설명된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다가 ‘그만 자야지’ 하고는 컴퓨터의 파일을 휴대폰에 옮기고 침대에 누워서 본다. 그게 쉬는 것이다.

<송길영 ‘상상하지 말라’를 읽다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그들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에 감사의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내가 밥을 어떻게 먹고 화장실을 언제 가며 꿀처럼 달콤한 커피를 언제 마시겠나. 나 또한 옛날 엄마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웠나 싶을 정도로 유튜브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휴대폰이나 아이패드를 켜주고 있는 것이다. 공룡을 가장 좋아하는 내 아들은 이미 핑크퐁에서 나오는 공룡 관련 동화나 동요는 모두 섭렵했고 각종 다른 채널에서 나오는 공룡도 거의 다 본 것 같다. 한동안 ‘로보카 폴리’와 ‘출동 슈퍼윙스’에 빠져 지내다가 요즘은 ‘바다탐험대 옥토넛’에 취해있다. 아이에게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같이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더 홀딱 빠져서 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 내 경우 공룡이나 헬로카봇보다는 폴리나 슈퍼윙스 쪽이다. 일단 캐릭터들이 너무 귀여워서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 밖의 조연들도) 입 밖으로 연신 “아, 너무 귀엽다, 귀여워”하면서 보고 있다. 주제가를 따라 부르는 건 당연하다. 요즘 유행하는 최신곡은 정말 1도 모르지만 로보카 폴리, 헬로카봇, 슈퍼윙스, 옥토넛의 주제가는 다 외우고 있다! 내가 더 신이 나서 부르면 아이가 “엄마 따라 하지 마세여!” 라고 할 정도다.


머리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게 또 틀어준다


바다탐험대 옥토넛은 각각의 캐릭터도 무척 귀엽지만 성우들의 목소리 조화가 매우 독특하고(특히 바나클 대장은 세상 귀엽게 생긴 북극곰인데 목소리는 꽤나 진지하다) 스토리 자체도 탄탄하다. 일단 컨셉 자체가 좋다. 위험에 빠진 바다생물을 육지 동물들이 나서서 구조하고 보호한다. 모든 연령층이 볼 수 있는 ALL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몰랐던 각종 해양 동물의 정보도 깨알처럼 알게 된다. (흑, 너무 많이 본 티가 난다) 남편도 이 애니메이션이 맘에 들었는지(남편은 애니메이션 전공자다) 방송 VOD에서 시리즈를 통째로 구입하는 건 물론이고 궁금해져서 어느 나라의 것인지를 찾아봤단다. (답은 미국) 특이하게 옥토넛은 한 회가 끝나면 그 회를 마무리하는의미로 주제가를 부르는데 해당 화에 등장한 바다생물을 주제로 노래를 만든다. (그러니까 그 바다생물의 특징 같은 것) 노래 자체도 매우 신나고 경쾌한데 가장 좋은 건 제일 마지막 한마디다.


“오늘도 임무 완수~ 옥토넛 탐험대, 다음 임무까지 쉬어!”


illust by 이영채


우리 식으로 해석하면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정도 되겠다. 나는 이 “다음 임무까지 쉬어!”라는 멘트가 너무 좋아서 설거지할 때나 청소기를 돌릴 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반복 재생하고 있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리듬이 참 박력 있다) 들으면서 아, 나도 누군가가 다음 임무까지 쉬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쉬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말의 뉘앙스나 억양도 매우 중요하다. 장기든 단기든 프로젝트를 끝내고 하루 이틀 쉴 타임이 주어지면 나의 상사가 쉬어!라고 호탕하고 시원시원하게 말해주는 것과 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 없게 애매한 말투로 쉬라고 말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 옥토넛의 바나클 대장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쉬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콰지(고양이), 페이소(펭귄), 트윅(토끼) 등의 대원들은 박수를 치며 저절로 탭댄스를 추게 되는 건 아닌지.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말이다.


누군가에게 “쉬어”라는
말을 들은 게 언제더라


“쉬어”라는 말을 들은 게 언젠지 까마득하다. 매일 내게 주어진 임무는 잘했든 못했든 완수하는 것 같은데(그래야 하루가 끝나니까) 왜 좀처럼 쉴 틈은 주어지지 않는 걸까? 일하는 엄마들은 더욱 그렇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시 제2의 내가 시작 버튼이 눌러져야 하는 것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서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 쉬어 본 적이 없다. 아이를 픽업해 데려오면 가방만 내려놓고 저녁을 지을 동안 먹을 간식을 챙겨주고 청소기를 돌리거나 빨래를 한다. 쌀 씻어 밥을 안치고 간단히 국을 끓여 저녁을 먹인다. 물론 내가 이 모든 일을 하는 사이 아이가 보는 옥토넛도 열심히 임무를 완수하는 중이다. 그나마 아이가 3살 정도 되다 보니 애니메이션 같은 것도 보고 그러는 거지 그전에는 더 옴짝달싹 못하게 아이 옆에만 꼭 붙어있어야 했다. 클수록 육아가 조금씩 쉬워진다는 건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수가 늘어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유튜브 이야길 하면서 또 힘들다는 넋두리가 되었다. 힘들다는 말도 자꾸 하면 버릇된다는데 적당히 해야지. 사실 다 견딜 수 있을만한 힘듦이니까. 쉬라는 말을 듣고 싶긴 하지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도 누군가에게(그래 봤자 남편이겠지만) 기분 좋게 큰 소리로 외쳐줘야겠다.


"다음 임무까지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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