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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Dec 09. 2017

문득 나이 드는 게 겁날 때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서면서 여름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는 주말마다 집에서 꼼짝 안 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이 습관이 버릇이 되어 아무 데도 안 나가고도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게으름만 장착하면 된다. 근데 문제는 아이다. 괜히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고 뭐라도 보여줘야 할 것 같고. 사실 나는 얘도 일주일 내내 어린이집 다니느라 피곤했을 테니 주말엔 집에서 좀 쉬는 게 낫다, 쪽이지만. 어쨌거나 코에 실바람이라도 좀 불어넣어줘야 할 것 같아서 일요일 아침을 먹고 세 식구가 한 시간 반 낮잠까지 클리어 한 뒤에 가까운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섰다. 늘 그렇듯 나오면 나오는 대로 좋다. 바깥 날씨는 쌀쌀하지만 차 안에서 히터를 틀어 놓고 커피와 빵을 사 가지고 출발. 그렇게 목적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는 안개가 자욱했고 아이는 뒷좌석 카시트에서 초저녁 잠이 들고 말았다. 100미터 앞도 잘 안 보일 정도로 뿌옇게 낀 밤안개 사이를 비상등까지 켜고 조심스럽게 빠져나갈 때 정적을 깨고 남편에게 말했다.


“요즘 늙는 게 조금씩 두려워져.”


뜬금없는 내 말에 남편이 별다른 반응 없이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리기에 전날 밤 읽었던 소설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예외일 수 없는
노인의 삶


토요일 밤, 아이를 재워놓고 거실에 나와 지난주 짬짬이 읽던 프랑스 소설 ‘달콤한 노래’를 펼쳤다. 책의 3분의 1 정도가 남아 주말 밤이 지나기 전에 마지막 장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을 새벽 2시쯤 되어서야 다 읽고 쉽게 여운이 가시질 않아 일기도 써보고 SNS도 뒤적거렸다.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달콤한 노래’는 프랑스 여성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장편소설이다. 제목의 ‘달콤한’과는 거리가 먼 스릴러물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살인이 아닌 모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세 주인공(아내 미리암, 남편 폴, 보모 루이즈)의 삶에서 모욕은 어디에나 조금씩 분포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루이즈가 받는 모욕의 비중이 가장 클 것이다. 그녀는 늙었고 혼자다. 앞서 내가 이 책을 덮고도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글쎄… 늙는다는 것에 대해, 한 사람의 외로움에 대해 (안 그래도 요 근래에) 생각이 좀 많아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illust by 이영채


출근길 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가는데 창 밖으로 백발노인의 느린 발걸음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툭 건들면 쓰러질 듯 불안한 노인의 움직임을 보고 인간은 누구나 죽고 당연히 나도 저 노인처럼 나이들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무섭고 불안했다. 연로해 간다는 것에 대해 예전에는 덤덤히, 그래 사람은 다 늙고 죽게 돼 있지,라고 쉽게 받아들였으나 요즘은 받아들이는 정도가 좀 다른 것 같다. 뭐랄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게 이 세상에 대한 기대치나 미련 때문이 아니라 늙고 병든 사람들 특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병드는 그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그렇다. 이번에 읽은 ‘달콤한 노래’도 그렇고 (이 소설을 노인의 삶에 대해서만 포커스 맞춘 건 아니지만) 얼마 전 읽은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도 그렇고 늙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속으로 접하다 보니, 나라고 이들처럼 안 외롭고 처량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 않을까, 란 생각에 다다랐다. 병들어 늙는 것에 대한 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당신은 책을 많이 읽어서 치매 같은 거 안 걸릴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지만 그런 병이나 소외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는 걸 너무 많은 사례로 알 게 되었기 때문에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아프고 죽는다는 차가운 명제를 상기한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자식에게 의지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고 내가 부모님을 봉양해야 할지도 모른다. 닥치면 살겠지 한다. 미리 걱정하면서 고통을 가불 하고 싶지 않다.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중에서)


노후를 미리 걱정하며
고통을 가불 하진 말자


누구나 본인이 늙고 싶은 모습대로 나이 들어간다면 가장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그렇다고 날마다 언제 아프게 될지, 치매나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될지 모른다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만 노년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단순하고 짧은 내 소견으로 내린 그 해결법은 30년 40년 후를 생각할 겨를이 없도록 오늘을, 지금을 내 마음껏 살면 되지 않을까? 였다. 이게 사실 쉽지는 않다. 특히 자식 있는 부모들은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지내기엔 겁이 많이 난다. 근데 뭐든 후회가 없다면 괜찮지 않을까? 물론 날마다 후회 없이 살기엔 그것도 되게 벅차게 느껴지지만 ‘가급적’ 후회되지 않을 날 ‘위주로’ 살면 될 것 같다. 톡 쏘는 사이다처럼 개운해지는 해결법은 아니지만 스스로 조금 다독임은 된다. 그래도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쉽게 풀릴 것 같지도 않다. 겁이 많고 소심한 나는 불쑥불쑥 생겨나는 이 걱정을 곰인형처럼 껴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이 곰인형이 사랑스러워서 콧노래 흥얼거릴 날도 오겠지. 옛날 엄마가 자주 하던 말 중에 무섭다고 생각하니까 더 무서운 거란 말이 있다. 이보다 당연하면서 진리처럼 들리는 말도 없다. 나는 내가 치매에 걸리고 외로워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는 미래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무서운 거였다. 생각은 자유라는데 되도록 살만한 노후를 그려봐야지. 늙는다는 걸 의연하게 받아들이자. 무수히 많은 날 중 슬픈 날만 있겠는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 더 많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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