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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20. 2018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거든

1일1리뷰: 두고두고 힘들 때마다 찾게 될 워킹맘 공감서    

내가 처음 장수연 PD를 알게 된 건 바로 여기, 브런치에서다. 우연히 그녀의 글을 읽고 당연하듯 구독하기 버튼을 눌렀다.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구독하기 버튼을 누른 브런치 작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독성 높은 글, 공감되는 상황들, 유려한 문장이 아니지만 너무 와 닿았던 글들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도 나처럼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고 임신인 걸 알고 지우려고 마음까지 먹었던(그녀는 수술 예약까지 했었다) 터라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된 것처럼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자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건 아니지만 가끔 들어가서 새로 업데이트된 그녀의 글을 읽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이 나왔다는 걸 알고 언제나 그렇듯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주문했다. 


너무 여린 핑크빛 표지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글씨로 제법 단호하게 쓰인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란 제목은 작가가 하고 싶은 가장 솔직한 말인 것 같다. 그러니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진 말아줘, 라는 소제목이라도 달아야 할 것 같은. 표지 그림은 더 인상적이다. 긴 후드 코트를 걸친 엄마가 표정 없는 얼굴로 앞서 가는 아이의 후드를 손끝으로 잡고 있다. 실소를 자아내는 그림이다. 그리고 내가 아이에게 실제로도 자주 하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아이를 보호하고 있긴 하지만 최소한만 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 일반 종이 재질과는 조금 다른 표지 재질도 독특하다. 마치 보들보들한 아기 피부를 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장수연 피디가 나온 여러 팟캐스트를 들었다.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그녀의 웃음 속에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면 책이 그리 궁금해지지 않았다. 이미 다 읽은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가 그녀가 직접 팟캐스트를 만들었고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팟캐스트 또한 구독 청취하고 있다. 

어느 주말 오전 11시경. 어김없이 아이 밥을 먹이다가 이 책을 펼쳤다. 한번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펼쳤다가 설거지까지 미루고 책을 놓지 않았다. 브런치 글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었다곤 하지만 좀 더 단단하고 탄탄하며 구체적이다. 육아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그녀의 일과 신념 등을 엿볼 수 있고 더불어 중간중간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도 내겐 무척 흥미로웠다. 수없이 많은 부분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고 그중 몇 군데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 올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주책없이 눈시울과 코끝이 붉어지기도 했다. 막상 여기가 왜?라고 사람들은 동의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단순히 밑줄이 아닌 형광펜으로 그어 놓은 문장은 이거였다. 


“합격할 거예요. 응원할게요. 나와 하율이는 당신의 허들이 아닌 발판이에요.”


이 말은 장수연 피디가 아이를 낳고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JLPT 시험을 치르기 전날 남편이 건넨 편지에 적힌 글이다. 아이와 남편이 나의 허들이 아니라 발판이란 말이 왜 그렇게 울컥하던지. 나 또한 내 인생이 아이나 가족을 허들처럼 여겨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뛰어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도약할 때 내 곁에서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텐데. 


“아이는 내가 무엇을 한다고 더 빨리 자라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더 천천히 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수연 씨, 왜 인간이 아이였을 때를 기억 못 하는지 알아요? 내 생각에는 아이를 키우면서 직접 보라고 그런 것 같아요.”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듯 아이는 행복의 증명이 아니며, 당신이 선택에 따르는 무게를 감당하는 딱 그만큼 나 역시 내 선택의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여자가 내 안에 들어갔다 나왔나 싶을 정도로 너무 내 속을 꽤 뚫고 있는 것 같아 섬뜩할 정도였다. 그만큼 엄마 마음을 잘 알고 토닥여준다는 뜻이겠지. 내가 걱정이 될 정도로 시어머니 이야기를 거침없이 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렇게 시어머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진짜 미워해서가 아니란 걸 잘 안다. 진짜 미워하면 이렇게 쓰지도 않는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회사 같은 팀 후배에게 다 읽은 이 책을 건네며 읽어보라고 줬더니 이미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역시~ 좋은 글을 다 알아보는구나. 제목부터 내 마음에 훅, 하고 들어온 책. 맞아, 나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그러니까 우리 서로 잘해 보자. 나도 너도 처음이니까. 


“아빠가 잘 몰라서 그래. 첫째 딸은 어떻게 가르치고 둘째 딸은 어떻게 키우고 셋째는 어떻게 사람 맹글어야 되는지, 잘 몰라서 그래.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잖어. 그러니까 덕선이가 쪼깨 봐줘, 응?” <응답하라 1988> 


#처음부터엄마는아니었어 #장수연 #어크로스 

#키즈카페에서 애들 놀 때 짬짬이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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