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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21. 2018

익숙하면서도 이물스러운 보통사람

1일1리뷰: 눈과 귀와 손으로 세 번 읽은 소설 

지난 1월 새롭게 시작한 글쓰기 모임은 3달 동안 한 달에 2번 만나 쓰고 이야기 나눈다. 사전에 매 회마다 커리큘럼을 정해 놓았는데 바로 오늘 있을 모임 주제는 캐릭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으로 ‘나의 주변 인물에 대해 써보기’다. 모임 전에는 리더인 내가 미리 선정한 단편 소설을 읽어 오는데 이번에 고른 단편이 ‘조중균의 세계’다. 조중균의 세계는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라는 단편집에 실린 소설이다. 조중균의 세계,라는 단편을 먼저 알게 되었고 나중에 이 단행본을 샀는데 그 안에 수록되어 있었다. 모임 준비를 하면서 멤버들에게 읽어 보게 할 요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필사를 해 파일로 만들었다. 그렇게 세 번째 ‘조중균의 세계’를 만났다. 


첫 번째는 당연히 이 소설을 눈으로 읽었던 것이고 두 번째는 팟캐스트를 통해 귀로 들었던 것이며 세 번째가 필사를 한 것으로 손으로 읽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 편의 소설을 눈과 귀와 손으로 읽었다. 얼마나 좋으면 그러겠는가? 나는 이 소설이 너무 너무 좋아서 이번이 끝이 아니라 몇 번이고 더 읽을 예정이다. 세 번째 손으로 읽으면서 조중균이란 사람을 마치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쓴 작가의 능력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는 조중균은 점심 식사를 하지 않는다. 화자인 ‘나’는 그가 함께 먹을 사람이 없어서 그냥 굶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굶는 것이다. 구내식당이 있는데 무슨 돈을 아끼냐는 물음에 먹지 않으면 돈을 돌려준다는 조중균의 말을 듣고 솔깃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중균이 그렇게 점심을 먹지 않게 되기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으며 그 사이에 그는 이런저런 굴욕을 맛보기도 한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조중균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겉으로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누가 됐든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겠단 생각이 확고해진다. 인디언 속담 중 ‘그 사람을 평가하려거든 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는 말이 있다. 겉모습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점심 안 먹는 게 몸 가볍긴 해요. 건강 챙기시는구나.”

“아닙니다. 먹고 싶은데 참습니다.”

그때 거울이 있다면 내 표정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다. 

“왜요? 왜 먹고 싶은데 참아요?”

“식대, 아끼려고 그럽니다.”

“무슨 식대를 아껴요? 회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이고 무료잖아요.”

“무료 아닙니다. 안 먹는다고 하면 돌려줍니다. 구만, 육천원.”

조중균씨는 말 중간에 쉼표를 넣어 이상하게 끄는 버릇이 있었다. 

그나저나 연봉에 포함된 식대를 무슨 수로 받아냈다는 말인가?

“구만육천원이면 크다.” 

(조중균의 세계 중에서) 

김금희 작가의 소설은 평범한, 우리가 쓰는 말들로 이뤄져 있어 쉽게 읽히지만 뼈가 있다. 이런 말로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 때문에 왠지 나도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하지만 막상 써보면 이런 글이 더 쓰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된다. ‘너무 한낮의 연애’에는 총 9개의 단편 소설이 나온다. 어느 하나를 꼽기 힘들 정도로 전부 매력적이다. 완전 내 취향이라고나 할까? 끝으로 책 뒷 표지에 권여선 작가가 그녀의 소설에 대해 쓴 부분을 옮겨본다. 목구멍 안쪽에서 완전한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꿀렁거리기만 하는 소감을 이리도 잘 정리해 주셨으니 말이다. 


“평범한 세상이 김금희의 문장을 통과하면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정오처럼 익숙하면서도 이물스럽게 변한다. 김금희의 소설에는 생생하면서도 아득하고 낯설면서도 그리운, 어쩌면 ‘오래된 미래’라고 부를 수 있을 세계를 지금 이곳에 아무렇지 않게 부려놓는 이상한 통합과 환기의 근육이 꿈틀대고 있다.” (권여선, 소설가) 


#너무한낮의연애 #김금희 #문학동네 

#어떤 인간을 이해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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