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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22. 2018

내 노후가 이러지 말란 법 없잖아

1일1리뷰: 가슴 먹먹함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믹스커피를 한 잔 탔다. 좀 전에 메밀차를 마시던 종이컵에.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차와 티백을 버리고 거기에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부었다. 이상하게 믹스커피는 마시지 않고 타서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안정이 된다. 뭔가를 쓸 준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책을 적게 읽는 건 아닌데 읽고 마는 것에 그치는 게 아쉬워 무작정 매일 서평을 하나씩 쓰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이번 주 들어 벌써 네 번째의 서평이다. 물론 매일 한 권씩 읽는 것이 아니니 그간 읽었던 책 중에서 서평 쓸 것을 고른다. 어떤 책으로 쓸까 (내가 읽은 책) 목록을 살펴보다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를 골랐다. 읽은 것은 두어 달 정도 되었지만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는 책이었다. 이제 좀 털어낸 정도. 즐겨 듣는 팟캐스트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고 팟캐스트를 다 들으면 내용을 다 알게 될까 봐 듣기를 멈췄다. 이런 경우는 종종 있다. 


레일라 슬리마니라는 작가도 처음 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책이 번역된 게 ‘달콤한 노래’가 처음이란다. 2016년 공쿠르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문학의 스타 탄생이란 타이틀은 내게 아무렇지 않다. 그저 책 미리보기를 했을 때 소설을 시작하는 첫 문장만이 구매 버튼을 누르게 했을 뿐.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장난감 더미 위에 부유하듯 너부러진 아기를 회색 커버 안에 누이고 뼈마디가 비틀어진 몸 위로 지퍼를 채웠다.”


아기를 낳은 뒤 이런 문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 안 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 줄은 몰랐다. 이런 모든 순간에 나도 모르게 내 아이를 넣게 된다. (최근에 영화 ‘미씽’을 보았는데 그 영화도 너무 힘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앞으로 이런 아이와 관련된 영화는 정말 보기 힘들겠구나,를 다시금 깨달았다.) 달콤한 노래는 아기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게 주목적이 아니므로 아기를 죽인 사람도 시작부터 드러난다. 살인자는 바로 보모. 보모가 자신이 돌보던 아이 둘을 죽였으니 당연히 다음 내용은 왜 죽였는지에 대해 나올 것이다. 읽는 내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 페이지를 넘기지만 확실히 왜 죽였는지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진 않는다. 그건 우리 각자의 몫일지도 모르겠다. 도입부에서 살인 현장이 나왔다고 해서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런 내용은 없고 인물 간의 심리 묘사나 공감할만한 상황들이 더 많이 드러난다. 작가는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사람들의 삶이지만 어쩜 이렇게 우리 사는 모습과 비슷한지, 신기할 정도였다. 

조목조목 따져보면 다양한 방면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점은 노인의 삶이었다. 특히 가난한 노인의 삶. 이 소설에서는 바로 보모 루이즈다. 나이를 한두 살 먹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노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요즘 나는 곧잘 이 노후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곤 한다. 길을 지나다 노인을 봐도 그렇고 가까이는 칠십이 다 되도록 일을 하는 친정 엄마나 일을 하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해 못하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는 시어머니를 봐도 그들의 삶 중 어느 것 하나 즐겁고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고 왜 저렇게 살라는 법이 없겠어?라는 생각과 동시에 불안이 엄습하곤 한다. 빚만 가득 있고 갈 곳 없는 보모 루이즈와 나의 노후가 오버랩됐다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까마득한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무섭고 두렵다. 그밖에 부부 생활이나 육아에 대한 공감은 말할 것도 없다. 직장에 나가 일하고 싶다는 아내 미리암에게 너무 자연스럽게 “그럼 아이는 누가 키워?”라고 말하는 남편 폴. 육아는 당연히 아내, 여자의 몫이라고 단정 짓는 우리 사회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씁쓸하기도 했다. 


중편소설 정도의 분량으로 가독성이 뛰어난 문장은 물론 흡입력 또한 대단하다. 중간중간 보모 루이즈를 아는 인물들이 그녀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삽지처럼 끼워 넣어 지루할 새가 없다. 일상에 있을 법한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오래간만에 책 읽는 재미를 돋우게 할 수 있는 달콤한 노래. 아기를 죽인 보모 루이즈의 남은 삶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삶 때문에 책장을 덮고 나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몸소 경험하게 되는 소설이다. 


#달콤한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아르테 

#금요일 밤에 읽기 시작하면 아마도 토요일까지 날밤 새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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