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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Feb 27. 2018

대단한 걸로 이혼하는 줄 알겠지만

1일1리뷰: 사소한 걸 무시하면 일상이 무너진다 

요즘 나와 남편은 거의 싸우지 않는다. 물론 아예 안 싸우는 건 아니다. 그런 그와 신혼 때는 무척 자주 싸웠던 것 같다. 종종 싸우다가 정말 크게 한 번 싸운 적이 있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혼’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어떤 욕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는 나에게 심한 욕을 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무던하고 순한 그의 입에서 욕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내가 상황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날 남편은 집을 나갔다. 둘 다 그렇게 헤어지는 줄만 알았던 밤이었다. 


보통 신혼 때 많이 싸운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을 따로 살던 두 사람이 하루아침에 함께 살게 되었고 그 사이 간극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사랑해서, 데이트하고 헤어지는 게 싫어 결혼한 우리 부부도 싸우고 헤어지자는 말을 할 만큼. 남이었던 남녀가 한 집에서 살아나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주의 기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싸우는 이유가 참 별거 아닌 게 많다. 되게 사소한 걸로 싸움은 시작된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거나, 잘 씻지 않는다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거나, 머리카락을 줍지 않았다는 등등의 이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대방에게 완벽을 기대할수록 이런 사소한 것에 발끈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발을 씻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을 리 없어, 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니까. 

홀딩 턴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인 서유미 작가의 최근작이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소식이 들리면 내용도 보지 않고 주문부터 하는데, 이번 홀딩 턴도 그랬다. 이런 팬심은 작가의 소설 한두 개만 읽어봐도 굳건해진다. 홀딩 턴은 결혼 5년 차인 부부가 이혼하기까지의 과정과 인물 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 써 나간 소설로 두 사람 사이에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극복할 수 있는 것과 넘어가기 힘든 것을 헤아려 본다. 앞서 나의 경험담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바로 홀딩 턴에서 두 사람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 또한 별 것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원은 영진이 발을 씻지 않는 것에서 이 같은 다짐을 하게 된다. 발을 씻으라고 말하는 영진에게 평소처럼 지원은 알았다고 나중에 씻겠다고 대답한다. 


살다 보면 어떤 대단한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나 동기는 무척 미미한 게 많다. 그중 이혼이 가장 빈번히 그러지 않나 싶은데 거꾸로 말하면 되게 작고 사소한 것이나마 우리는 대충 아무렇지 않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홀딩턴 #서유미 #위즈덤하우스

#이 사람하고 계속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읽어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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