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괜히 반가워지는 사진이 있다. 주로 빈틈이 찍힌 사진들. 빈틈이 보이는 사진은 찍은 이가 대놓고 찍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잘 나온 부분만 확대하거나 크롭 하지 않은, 그런 걸 굳이 숨기지 않는 사진들. 나도 처음에는 세련되거나 예쁜, 화려하거나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것들을 주로 찍고 그것도 모자라 필터를 통해 좀 더 ‘화장’을 시킨 다음 업로드를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필터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 있는 그대로를 찍어 올린다. 왠지 그게 더 있어 보인 달까? 여기서 ‘있어 보인다’의 의미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뜻 정도겠다.
최근 ‘효리네 민박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아이를 일찍 재운 날에는 본방을 보지만 그러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다시보기를 한다. 이때는 주로 늦은 저녁으로 라면을 먹는다. 효리네 민박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리얼리티다. 당대 톱스타였던 이효리는 어떻게 살까? 를 궁금해하며 사람들은 예의 주시한다. 하지만 시즌 1 때 드러났던 것처럼 이효리 이상순 부부는 너무 자유롭게 살고 있다. 말이 좋아 자유롭게지 조금 지저분해 보이기도 한다. 일단 커다란 개 네댓 마리가 집에 늘 있다. 아니 집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집과 마당을 왔다 갔다 한다. 거실 바닥을 굳이 클로즈업해보지 않아도 그 상태 훤하다. 고양이는 또 어떻고. 한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정말 내 입으로 털 들어가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그런 고양이들 중 늘 한두 마리는 반드시 식탁 위에 올라가 있다. 물론 동물을 키우는 것만으로 그들의 청결 상태를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 없다.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있는 온갖 물건들과 인테리어 컨셉을 찾아볼 수 없이 생활에 집중해 버린 살림살이들이 그렇다. 치우지 않은 채 계속 쌓여가는 잡동사니들이 우리 집과 다르지 않아 괜히 좋다.
너저분한 이효리 집을 보면
왠지 마음이 놓인다
남들은 깔끔하게 정돈된 인테리어나 미니멀리스트들의 살림(거의 뭐가 없는)을 보며 역으로 힐링을 경험한다고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정신 하나도 없게 치워지지 않은 거실과 주방과 욕실을 볼 때면 마음이 확 놓여 버리고 만다. 어제 방영된 회차에서는 아주 잠깐 그녀의 냉장고 내부가 비췄는데 그게 또 그렇게 위안이 되더란 말이다. (무슨 변태도 아니고) 김이 다 빠져버린 것 같은 1.5리터 사이다 페트병을 비롯해 각종 밀폐용기들이 정신없이 놓여 있고 봉지 봉지 뭐가 가득하다. 순간적으로 나는 이렇게 내뱉고 만다. 이효리도 저렇게 사는구나. 어쨌거나 이 모든 게 깔끔하게 치우지 못하고 늘 청소를 미루는 나에 대한 합리화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얼마 전에는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 아들의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금요일 저녁 두 집 남편들은 약속이 있어 늦는다고 했고 우리들은 치킨을 시키고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일주일의 피로를 수다로 풀었다. 두 달 차이로 아이를 낳았고 두 녀석 모두 아들, 이런 인연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닌지라 서로가 편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정식으로 초대받아 놀러 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긴장 아닌 긴장을 했다. 이유인즉 인스타그램으로 미리 만나본 그녀의 집은 아기자기하고 트렌드에 따른 인테리어 감각으로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얼마나 예쁘게 살고 있을지 우리 아이가 괜히 친구 방을 보고 부러워하는 건 아닐지 괜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아랫집 거실에는 일단 아이 장난감이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음… 우리 집과 별 차이 없군, 이라고 생각한 나는 미리 사온 맥주와 딸기를 보조 식탁에 내려놓으며 자연스럽게, 동물적 눈초리로 주방을 넘어봤다. 구석구석 박혀 있는 아이 과자 봉지며 한차례 타이밍을 놓친 설거지 거리와 다소 어지럽게 걸려 있는 국자, 주걱 그리고 뚜껑이 반쯤 열린 냄비들이 왠지 반가웠다. 빈틈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살림살이도 나와 같았다! 아이 둘이 정신없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이 우리는 거실에 작은 밥상을 펴고 배달 치킨과 그녀가 직접 만들어준 떡볶이를 냄비째 놓고 맛있게 먹었다. 그러던 중에 아이가 ‘쉬’가 마렵다고 했고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욕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고 또 한 번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리얼리티 프로를 보며
청소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았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이 있다. 물론 거기서 거기인 채로 살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살면 살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우린 다 비슷하게 산다는 걸 알게 된다. 효리네 민박과 더불어 다양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싶다. 저 사람도 나처럼 싱크대 구석에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두네? 저 연예인도 나처럼 선반 위가 지저분하구나. 그들도 나처럼, 저 사람도 나같이, 사. 는. 구. 나.
실제로 나는 그런 걸 보고 겪으면서 살림에 대한 부담과 강박을 많이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열중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대충 살기도 해. 먼지 한 톨 없이 사는 것도 쾌적한 삶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지구가 망하는 일도 아니니까. 고양이 털에 유독 민감했던 나는 퇴근이 늦어져 청소기를 못 돌리는 날은 왠지 찝찝해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하지만 효리네 민박에서 고양이들과 털 전쟁이 없을 리 없겠지만 그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일주일에 청소기는 (주말 포함)한두 번 돌리는 것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제는 털과 먼지가 있을 그 거실 바닥에 아이가 뒹굴어도 괜찮다. 그리고 사실, 내 예상보다 털이 많이 묻지도 않더라. 끝으로 내가 ‘최애’하는 책 중 하나인 제니퍼 매카트니의 ‘나는 어지르고 살기로 했다’의 한 문장을 읊으며(지저분함에 대한 주옥같은 글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를 고르기 힘들었다) 끝을 맺는다.
“조금 더 어지르고 사는 대가로 맛볼 수 있는 달콤한 이익을 생각해라.”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