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Jun 04. 2018

쓰다 보니 바뀐 사람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스페인 어린이책 작가 미겔 탕코의 ‘쫌 이상한 사람들’에는 이런 사람이 나온다. 보도블록에 지나가는 개미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는, 작은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과 혼자라고 느끼는 누군가가 있으면 마음이 쓰이고 많은 사람들과 다른 길로 가고 춤을 추고 싶을 땐 곧장 춤을 추는, 그런 사람들. 지난 수요일 글쓰기 모임(문토: 쓸 수 있는 밤)에서 멤버들과 함께 읽은 책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었다. 그림책은 처음 읽는 거였는데 페이지마다 짤막한 한두 줄 글에 모든 말을 하고 있는 것과 천천히 그림도 함께 보게 되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그날 글쓰기의 주제는 어찌 됐건 사람, 즉 내 주변에 좀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이상하다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이상하지만 좋고, 이상하지만 매력적일 수도 있으니까. 이날은 지난 시즌과 달리 많은 멤버들이 (조금 이상한) 친구들에 대해 썼다. (지난 시즌은 이상한 직장 동료 및 상사가 많았다)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니 직접 그들을 만난 것처럼 생생히 전달되기도 했다. 그렇게 좀 다른, 이상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한 멤버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A는 몇 년 전 책 읽는 모임에서 그가 만난 친구라고 했다. 매주 한국 작가의 단편소설 두 편을 읽고 만나는 모임. A는 그 모임을 만든 사람이고 그는 이 모임이 3회쯤 되었을 때 참여하게 되었다. 딱히 돈을 내고 듣거나 쓰는 모임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의 참여도가 들쑥날쑥 이었고 그를 비롯한 몇몇 다른 고정 회원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 유령회원을 정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던 A는 그 일을 잘 처리하지 못했다. 결국 그와 다른 친구들이 정리(?)하는 일을 했고 A는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얼굴이 좀 상기되었고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블로그를 시작했고 앞으로 그 블로그에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적겠다고 했단다. 싫은 것 1, 싫은 것 2, 싫은 것 3… 그렇게 하나씩 올라오던 걸 보는 친구들은 이러다 말겠지 했지만 A가 싫어하는 것들은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올라오는 중이란다. A가 싫어하는 건 이런 거였다. 

의지 없는 끄덕거림처럼 관계에서의 사소한 싫음 이거나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하는 자신에 대한 싫음 일 때도 있고, 함께 읽어요 라고 하면 되는데 꼭 일독을 권합니다 처럼 일독을 한자어로 쓰는 것도 싫다고 했다. 다음은 그가 직접 쓴 A에 대한 글이다. 


“그 애를 안 지 4년이 넘었다. 그 애를 안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그 애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알던 그 애가 맞나 싶을 때가 있어서다. 여전히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말투지만 자기가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칼같이 선을 긋는다. 그 단호함에 선득선득 놀랄 때가 있다.”


A가 싫어하는 것 시리즈는 결코 대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소소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나도 그게 싫긴 한데 딱히 싫다고 표현해 본 적은 없는 것들이었다. (어림짐작으로) 단호하지 못했던 성격의 A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그때그때 구체적으로 적음으로써 어떤 변화를 바랐던 건 아닐지도 모르지만, A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A는 그것들을 글로 씀으로써 자신에 대해 더 잘 파악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글로 써보지 않았으면 모른 채 넘어갔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생각은 많이 해도 넘치면 흐르기 마련이어서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 놓지 않으면 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하지만 A는 그것들을 적어놓기로 했고 쓰면서 변한 것이다. 


이날 모임에서 A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멤버들은 적잖이 긍정적인 충격을 받았다. 나도 그렇다. 그가 읽어준 글을 다 읽고도 몇 차례 더 궁금한 것들을 물었고 이렇게 글로 남기기까지 하니 말이다. 멤버들은 당장 ‘내가 싫어하는 것’을 써봐야겠다며 굳은 의지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단순히 일기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그날 있었던 속상한 일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쓰기 시작하지만 쓰다 보면 내 마음의 결이 정돈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싫어하는 것을 씀으로써 싫어하는 걸 하지 않게 되는 자신을 보게 된 A는 쓰기 전과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산 증인이 버젓이 블로그로 그 변화된 삶을 간증하는데 써보지 않고 배길 수가 있나? 


매거진의 이전글 말도 안 돼,라고 하는 날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