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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01. 2018

맡길 줄도 알아야지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어딘가 찝찝하고 이건 아닌데 싶었다. 물때가 쌓여가고 머리카락이 뭉쳐있고 타일 줄눈의 색이 점차 변해가는데 정작 청소는 너무 하기가 싫었다. 남편이 좀 알아서 해주면 너무 행복하겠는데 신혼 때와 달리 그는 화장실 청소를 나서서 하지 않는다. 남자의 눈에는 이 지저분한 상태가 보이지 않는 걸까? 나는 그에게 욕실 청소 좀 해주면 안 되겠냐고 묻는 것조차 싫어서 말 안 하고 넘기길 몇 주가 지났다. 내가 하기 싫은 걸 남한테 시키는 건 스스로도 못마땅하다. 갈등의 다양한 요인 중 다름을 틀림으로 인정하는 것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화장실 청소 안 하는 그에게 틀렸다고 하기보다(과거에는 그랬다) 다른 거라고 인정했다. 우리 부부가 나름 세운 원칙 중 하나는 본 사람이 먼저 치우고 불편을 느낀 사람이 먼저 해결할 것. 그러니까 남편은 욕실이 지저분한 것에 대해 불편함을 못 느끼니 해결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고 나는 지속적으로 짜증이 나니까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정말 하기 싫다. 뭐 어디 욕실 청소뿐이겠는가? 주방 싱크대 정리며 개수구 청소, 서랍 정리 등 온갖 집안일이 만사 귀차니즘이다. 하긴 해야겠는데 하긴 싫을 때 ‘대행’만 한 게 없다. 나는 요즘 인스타그램에 곧잘 눈에 띄는 청소대행업체의 어플을 깔았다. 긴가민가 싶어 검색을 하다 말다 한 게 여러 차례. 불만인 사람이 있는 반면 계속 쓰고 싶다는 사람도 있으니 나는 한번 이용해 보기로 했다. 어플을 설치하자 시작 화면이 떴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마음에 드는 카피가 보였다. 


“행복한 일에 집중하세요”


구구절절할 것 없다. 청소는 우리에게 맡기고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말. 갑자기 이 업체에 대해 없던 신뢰도가 확 올라가면서 무조건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체크를 하고 메모를 남기니 간단히 예약이 되었다. 돌아오는 수요일에는 아이가 내년에 옮길 예정인 어린이집 설명회가 있어 휴가를 냈는데 겸사겸사 그날로 청소 날짜를 잡았다. 오전 9시부터 1시까지 4시간 동안 가사도우미가 우리 집에 방문해 내가 원하는 곳을 청소해 준다. 청소도구는 모두 우리가 쓰던 것으로 정말 내가 청소하듯(물론 더 잘)해준단다. 

나는 도우미가 오는 전날부터 괜히 두근거렸다. 가사도우미가 오는데 왜 내가 떨리지? 하하 평생 남한테 집안일 시켜본 적 없는 일할 팔자여. 가사도우미가 지저분하다고 역으로 나에게 잔소리할 것 같은 생각에 그날 새벽 꿈자리까지 사나웠다. 그렇게 오전 9시가 되었고 인상 좋은 친정 엄마 또래의 여사님이 오셨다. 원하는 장소를 말하고 나는 어린이집 설명회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나갔다. 아, 뭐지? 이 부잣집 사모님이나 누릴 것 같은 호사스러운 기분은! 


결혼을 하고 육아를 병행하며 살림까지 하는 데다 직장엘 다니고 개인적으로 강연, 강의에 책 작업까지 하는 인생을 살아보니 내 인생에 선택과 집중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4시간 청소에 45,000원이란 비용은 외식 한번 안 하면 되는 금액이다. 집밥 한 번 해 먹거나 마음에 드는 티셔츠 하나 안 사면 그만이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이렇게도 편한 걸. 뭐 꼭 돈 때문에 내가 가사도우미 쓰는 걸 두려워했던 건 아니다. 타인을 집에 들여서 다른 것도 아니고 청소를 부탁한다는 게 어딘지 모르게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듯 불편할 것 같았다. 내 일을 남에게 넘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모두 다 내가 해결하고 처리해야 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것에는 타인을 믿는 신뢰도 수반돼야 한다. 가사도우미 한번 부르는데 이리도 많은 걸 깨닫게 되다니. 


어쨌거나 앞으로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하기 싫은 것을 대신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것으로 얻는 소득이 있다. 그 정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겐 있다. 나는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잘 해내야만 하는 것에 집중하며 거기에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글도 잘 쓰고 살림도 잘 하는 이유미여야만 한다고 그 누구도 정해주지 않았다. 아마도 나 스스로 틀을 세워놨던 것뿐이리라. 쓸데없이 완벽을 추구했다. 자, 그러니 우리 모두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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