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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15. 2018

행복 자랑하기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좀처럼 멍 때릴 시간이 없는 워킹맘인 나에게 한 달에 한번 유일하게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회사가 주는 이 3시간은 ‘리프레시 런치’라고 하여 그 달에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직원들에게 12시부터 3시까지 점심시간을 매우 길게 주는 사내 복지다. 이 황금 같은 시간에 나는 당연히 멍 때리며 카페 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는다. 다른 무엇보다 간절한 시간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을 수 있는 시간. 생각을 정리하거나 뭐 그런 거 없다. 그냥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게 내겐 리프레시다. 리프레시 런치 당일 12시가 되면 에코백에 2권 정도의 책과 이어폰을 챙겨 합정역 근처에 있는 투썸플레이스에 간다. 2층 창가 자리가 나의 지정석이다. 


이번에도 가방에 2권의 책을 챙겨 카페로 갔다. 오전에 김밥을 먹어서 점심은 카페에서 간단히 해결하려고 크로크무슈와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나의 지정석인 커다란 창가 자리 구석을 보니 다행히 비어있다. 크로크무슈를 잘라먹으며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아 주말에 못 본 ‘신서유기’를 시청했다. 나직이 키득대다 보니 30분이 훌쩍 넘어 책 읽을 시간이 없어지는 게 아까워 냉큼 이어폰을 뺐다. 소설과 에세이를 챙겨 온 나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소설부터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에 빠져 본격적으로 집중이 되려는 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찰칵 소리가 들렸다. 나도 크로크무슈를 먹기 전 언제 쓰게 될지 몰라 사진 한 장을 찍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책에 집중하려 했다. 그런데 찰칵 소리는 끊이질 않았고 거의 20번이 넘게 이어졌다. 옆 자리 여자를 대놓고 돌아보진 못하고 다른 곳 보는 척하며 슬쩍 보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이렇게 놨다 저렇게 놨다, 함께 먹는 빵을 찍고 또 찍고 펼쳐 놓은 영어 문제집(영어 문제집은 내가 있는 동안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않았다) 위에 올려놓고 또 찍고… 도가 지나칠 정도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사진 찍기가 어느 정도 잠잠해졌나 싶을 때 여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어어, 뭐?! 대박. 진짜!!!?”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걸까? 옆에 있는 나도 그 내용이 너무 궁금할 정도로 여자는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야야, 웬일. 대에박! 지금 빨리 SNS에 올려. 야. 그런 걸 올려야지. 요즘 시대에 공무원 합격이 웬 말이야. 야, 됐고 밥 사!”


그러니까 전화를 건 친구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한 모양인데 소식을 들은 여자는 SNS에 올리라는 말을 가장 먼저 했다. 음… 역시 사진을 여러 번 찍을 때부터 알아봤다. 

백영옥 작가의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문장 “관계에 지쳐 혼밥을 먹으면서도, 기어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좋아요’를 기다리는 마음”은 정확히 이 시대에 SNS가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혼자 밥을 먹어도 나는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며칠 전 나는 회사에서 진행한 단편영화 프로젝트의 개봉 소식을 알리는 앱푸쉬 문구를 썼다. 15분짜리 짧은 영화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젊은 여자가 시골에 내려가 자신만의 빵집을 차리는 소소한 우여곡절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행복을 자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는 객관적 행복이 아닌 

작아도 확실한 나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 이야기” (앱푸쉬 문구) 

과거 물질적으로 얼마나 소유했는가를 자랑하는 시대에 살았다면(물론 지금도 그렇지 않은 건 아니나) 요즘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자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꼭 물건의 소유가 아닌 하다못해 바닥에 떨어진 낙엽 한 장의 사진을 올리고도 그것을 보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전부 자랑에 포커싱 할 수는 없지만 요즘 SNS의 대부분은 자랑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기 마련이다. 혹자는 자랑하려고 SNS 하는 거지, 그럼 뭐 하러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에게 SNS로 자랑부터 하라는 여자. 자랑을 하고 인정을 받아야만, 하트의 개수가 원하는 만큼 눌러져야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조금은 측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내 주변에 SNS를 전혀 하지 않는 몇몇 사람이 있는데 때로는 그들이 대단해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있어' 보인 달까? 그만큼 행복 자랑하기에 급급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일단 나부터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옆에 앉은 여자의 행동과 말들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날 카페에서 찍은 크로크무슈와 가져간 책 사진을 찍어놓고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은 건 순전히 그 여자 때문이었다. 지금 내 상태 공개하는 것을 참는 것. 행복 자랑을 참아 보는 것. 그 기분은 의외로 괜찮았다. 어째서인지 쾌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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