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를 향해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럴 수 있어.”
아들은 네 살이다.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마치 나에게 하는 말인 양 반복한다. 희한하게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법한 말을(이해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할 때 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그럴 수 있어”는 그런 말 중 하나다. 내가 아들에게 “그럴 수 있어”라고 할 때마다 남편이 요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애한테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분명 애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니까 그런 것일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레이저 눈빛을 날리며 뭐?!라고 대꾸한다.
그럴 수 있다, 는 말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 내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했는데 그걸 아, 저 인간 도대체 왜 저래?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럴 수 있지 뭐,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은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다. 비슷한 성격을 지닌 형제, 친구라 할지라도 분명 어딘가는 다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분쟁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왜 내 맘 같지 않아? 왜 내 의견하고 다른 거야? 왜 그걸 좋아하는 거야? 난 싫은데! 우리는 별 것 아닌 사소한 다름을 흡수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화의 불씨를 키운다.
인스타그램에 요즘 새롭게 추가된 기능 중 ‘내 스토리’라는 게 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동영상을 찍어 간단한 이미지나 텍스트를 꾸며 올리는 것인데 피드처럼 내가 지우지 않는 이상 계속 남는 게 아니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요즘은 팔로워들의 이 스토리를 보는 것도 나름 재미다. 며칠 전 옛 직장 동료의 스토리를 보다가 매우 인상적인 메시지를 읽었다.
“손님과 저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평소 다니시는 길이 있으면 편안히 말씀해 주시면
안전하고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메시지는 다름 아닌 택시 조수석 뒷면에 붙어 있었다. 정말 와! 소리가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멋지다, 라는 건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쉽게 내 의견을 피력하기 힘들고 알 수 없는 불신이 칸막이처럼 놓인 택시에서 저런 메시지를 발견했다는 것은, 정말이지, 내가 직접 탄 택시가 아니란 게 한스러울 정도로 저 택시에 탄 동료가 부러웠다. 저 메시지가 인상적인 건 다름을 인정하는 기사님의 자세다. 저 이미지를 캡처해 저장해 놓고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그리고 빨리 이 메시지로 글이 쓰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사실 나는 택시 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첫째는 택시만 타면 멀미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택시에 타면 이상하게도 내가 기사의 기분을 맞춰줘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식을 해도 가능하면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집에 가고 싶다. 이유는 하나 택시 타기 싫어서다. 무서운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그런 것은 둘째 문제다. 일단 택시에 타면 한 톤 높인 목소리로 기사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열에 일곱은 대답하지 않는다. 인사에 응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을 때가 많다. 내 인사에 대꾸해주지 않아 조금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어디로 가주세요 라고 말하면 알겠다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택시에 타서부터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그리고 중간에 "기사님 어느 쪽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할 때에도 대꾸하지 않는다. 어쩔 때는 아, 거 대답 좀 해주면 머리카락이 빠집니까!라고 소리치고 싶다. 이쯤 되면 나도 슬슬 화가 난다. 목적지에 도착해 내릴 때 기사에게 카드를 주고받은 다음 인사하지 않고 문을 최대한 쾅! 하고 닫고 내리는 일, 그게 나의 소심한 복수다. (그러면서 택시기사는 분명히 나를 욕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닌 택시기사님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만나보지 못했을 뿐.
그런데 말하고 보니 나 또한 ‘대답 없는 택시기사’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은 건 아닐까? 내 인사에 대답 좀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그들은 온종일 고된 노동에 치여 ‘대답 조차 잃은’ 것일 수도 있는데.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말은 쉽지만 참 어렵다. 가정에서는 부부나 자식 간에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 간에 다름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정말 말이야 쉽지,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메시지의 힘은 세다. “손님과 저의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택시기사의 다름 인정과 트인 마인드는 한동안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