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Dec 24. 2018

웃음기 사라진 노래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노랫말에서 카피에 대한 힌트를 종종 얻는다는 건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이야기가 담긴 걸 흥미롭게 듣곤 하는데 그런 면에서 윤종신만큼 큰 도움이 되는 작사가도 없다. 오래전부터 그의 노랫말을 좋아했다. 현실적인 가사. 어떻게 이런 걸 썼지?라고 할 만큼 공감 가는 노랫말이 많다. 그의 가사는 듣는 게 아니라 책처럼 읽혔다. 그의 첫 산문집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는 서점에서 아이디어 북을 사는 기분으로 집었다. 그의 노래와 가사의 배경이 내밀히 적혀 있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없다는 것. 한 꼭지를 읽을 때마다 반드시 그 노래를 찾아 듣게 되고 그러다 보니 좀처럼 속도는 나지 않았다. 잠시 잊고 있다가 다시 펼쳐도 여전히 좋다. 그는 책의 머리말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길게 늘이는 것보다 축약하는 걸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어서”라고 했는데 이런 면은 카피의 성격과 일정 부분 비슷하다. 나에게 더 인상적으로 들렸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노래 중 베스트 3 안에 들어가는 노래는 ‘오르막길’이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라고 시작하는 부분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발라드에서 이런 가사가 나온다고? 정말 그 답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다 듣고 또 들었다. 단순히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기 보단 그들이 함께 이겨내야 할 험난한 ‘오르막길’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책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를 펼쳤을 때 가장 처음 찾아본 꼭지도 ‘오르막길’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가사를 쓰게 된 배경이 너무 궁금했다. 


윤종신에 따르면 그는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처럼 막연하고 성의 없고 도움 안 되는 말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런 그가 오히려 힘을 얻게 된 말은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했던 말씀이었다. 

“1년 동안 죽었다고 생각해라.”

그는 이 말을 듣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위협적이고 비관적인 그 말이 오히려 힘이 되었다는 것인데 어떤 의미에서 와 닿았던 것인지 짐작이 됐다. ‘오르막길’의 가사에 그런 부분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노래 ‘오르막길’ 가사 中)

우리 앞에 조금 험난한 미래가 있는데 녹록하진 않을 거라고 힘들 수 있으니 각오하란다. 가끔은 어떤 노래가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한다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것이다. 처음 듣는 노래고 가수도 잘 몰랐는데 우연히 듣고는 인생 노래가 된다거나 너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어쩜 딱 내 이야기야! 내 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싶은 노래들. ‘오르막길’도 내게 그런 노래 중 하나였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무렵 나는 재정적으로 많이 힘들 때였다. 매달 들어오는 돈은 일정한데 자꾸 마이너스가 났다. 부족한 만큼을 친인척에게 돈을 꿔서 채웠다. 여유자금이 없었다. 맞벌이 부부에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대출이자에 카드 값(생활비)에 보험에 부모님 용돈 등 나가는 게 너무 많았다. 당연히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앞이 까마득했다. 노래를 듣다가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울컥하고 올라와 눈물이 팍 터졌던 부분은 여기였다.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도 우린 결국엔 만나 / 오른다면”

(노래 ‘오르막길’ 가사 中)


하지만 내 삶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 자신의 선택이었다. 내가 이 남자를 선택했고 이 결혼을 결정했으니 이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굴 원망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 아무도 나에게 이렇게 살라고 등 떠밀지 않았다. 그 누구도 아닌 노랫말이 앞으로 너 더 힘들 건데 그래도 가보자, 그러다 보면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어,라고 손목을 잡고 일어나라고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30번도 넘게 이 한 곡을 반복해서 들었다. 어느 순간 눈물이 쏙 들어가고 다짐이 자리 잡았다. 


다음 달은 어떻게 버티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까마득한 미래를 더듬으며 한숨짓기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발아래를 보며 걷는 것처럼 하루하루에 집중하기로 했다.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내면 나중에야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잘 못 살고 있는 게 아닌데 큰 일이야 나겠어?라는 심정으로 살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형편이 대단히 나아졌다고는 할 수 없다. 여전히 빚을 갚고 예상 못한 일들을 다급히 막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때만큼 절망적이진 않다. 당황하고 헤매지 않는다. 다소 완만해진 이 길 앞에 다시 오르막길이 생긴다 해도 처음처럼 안절부절 하진 않을 것이다. 경험하고 수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의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다를 수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