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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04. 2019

대중목욕탕의 아기 침대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마스다 미리의 <여탕에서 생긴 일>을 읽고 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은 게 없다. 그중 인상적인 내용, 30년 전 일본의 목욕탕에는 탈의실에 아기 침대가 있었단다. 하나도 아니고 대여섯 개가 줄지어 놓여 있고 아기를 데려온 엄마들이 목욕을 할 동안 목욕탕 주인이 그 아이들을 돌봐주는 식. 혹시 우리나라도 옛날에 이런 시스템이 있었나? 이렇게 획기적인 제도가? 내가 아는 한도에선 없다.

 

“엄마들이 씻는 사이 아기는 누가 봐주나 하면 목욕탕집 아주머니다. 젊은 엄마가 아기를 먼저 씻겨 탈의실로 안고 나오면 아주머니가 기다렸다가 ‘예, 예’ 하면서 받아 안는다. 막 삶은 고구마라도 받아드는 것 같은 광경이다. 따끈따끈한 아기를 건넨 젊은 엄마는 비로소 자신의 목욕 시간에 돌입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기 침대가 있는 목욕탕이라니! 기껏 해야 베이비시터가 있는 극장이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는데 (이런 극장은 실제로 있다) 목욕탕 아기 침대는 상상도 못 했다. 침대가 있다는 건 엄마가 마음 놓고 씻을 수 있도록 제대로 봐주겠다는 의미고 시스템이 확고하니 엄마들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고 작가도 말하고 있지만 어째 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허기사 책에도 나오지만 그 시절 일본에는 가정집에 욕실이 따로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요즘 젊은 엄마들은 대중목욕탕 자체를 잘 안 갈 테지. 


임신하고 아이의 성별을 모를 땐 딸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목욕탕에 함께 갈 수 있음이었다. 몇 달 후 아들인걸 알았을 때 적잖이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목욕탕에 대한 나름의 로망이 좀 있다. 남자아이니까 더 크기 전에 여탕에 함께 갈 수 있을 때 데려가야지, 하고 생각한 나는 지금까지 3번 정도 아이를 데리고 대중탕에 갔다. 너무 어릴 땐 위험하니까 엄두를 못 냈고 스스로 걸을 수 있고 커다란 아기 욕조에 넣어두면 앉아 있을 수 있으니 데려갈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접근은 아니었다. 일단 물이 많으니 목욕탕이 마냥 신기한 아이는 분주히 돌아다녔고 온탕, 냉탕은 워낙 깊어서 마음을 쉬 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 아이가 섰을 때 배 정도 오는 깊이의 미지근한 탕이 있는데 거기에서 곧잘 놀아 나는 얼른 세신사에게 몸을 맡긴다. 하지만 아이는 자꾸 내게 와서 말을 걸고 널려 있는 게 비누니까 욕조에 비누를 담가 뿌옇고 미끄러운 물을 만든다. 나는 세신사의 (마무리 마사지) 서비스를 온전히 받지 못하고 얼른 세신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내가 세신대 위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안절부절못할 때 곁에서 몸을 씻는 할머니들이 아이를 챙긴다. 아마 손주가 그 또래이거나 아니면 이미 많이 컸을 테지. 그들은 아이가 때 미는 나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물고기 장난감으로 아이의 관심을 끌어주고 미끄러지지 않게 붙잡아 준다. 위험한 장난을 치려고 하면 따끔하게 혼도 내준다. 매번 그랬다. 때마다 할머니는 달랐지만 그들은 한마음으로 아이를 돌봐줬다. 목욕을 마친 나는 연신 감사의 인사를 꾸벅꾸벅한다. 할머니들은 대수로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빙긋 웃어주신다. 


“나한테는 네 살 아래 여동생이 있는데, 아주머니가 그애의 기저귀를 채워주면 얼마나 좋던지. 엄마도 아빠도 아닌 남들도 동생을 소중히 하는구나. 나도 저렇게 컸구나 하는 안도감 같은 게 아닐는지.”


할머니들이 내 아이를 그저 장난치지 않도록 돌봐주는 정도가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좋아해 주는 마음이 행동과 눈빛 하나하나에 전해져서 더 안심되었던 그때. 아 이건 목욕탕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순간이구나 싶었다. 이전의 경험이 따뜻했음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매번 쿨하게 데려갈 수는 없다. 가장 큰 이유는 타인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다. 여탕에는 늘 할머니들이 계시지만 매번 그런 인정을 바랄 수는 없는 법. 30년 전 일본처럼 우리 대중목욕탕에도 아기 침대가 줄지어진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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