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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pr 18. 2019

너 인상이 바뀐 것 같아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얼마 전 찍은 영상 인터뷰를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공유했다. 같은 날 한 마케팅 매체에서 그 인터뷰 영상을 업로드해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 영상의 가 편집본을 제작자가 보내주어 나는 하루 전에 미리 보았는데 예상보다 (예상을 하긴 했다) 더 뚱뚱하게 나온 얼굴 탓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조명과 카메라 위치 탓을 해봤지만 결론은 내가 살찌지 않았다면 그런 변명이 다 무슨 필요가 있었겠나 싶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살 빼는 게 쉽지 않다. 공기도 맛있다는 다이어트 광고처럼 요즘 내 입에 맛 없는 게 없다.


나름 유명한 매체에서 단독으로 인터뷰 영상까지 찍었으니 나도 사람인지라 자랑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얼굴이 이 모양으로 나와서 영 마뜩잖다. 좀 더 갸름하게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고개를 떨군 채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긁어보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살찐 외모를 떠나 내가 한 일에 대한 걸 찍은 영상이니 미스코리아도 아닌 내가 외모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웃기다. 고맙게도 사람들은 영상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더 많은 친구 신청이 쇄도했다. 허기사 내 얼굴, 나나 관심 있게 보지 다른 사람들이 이 얼굴에 흥미를 가질 리 만무하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대구에 사는 친구가 이른 아침부터 카톡으로 말을 걸었다. 그녀와 내가 하는 대화가 원래 인사 따위 집어치우고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곤 하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 나이 들수록 관상이 좀 좋아지는 것 같아”

뜬금없는 관상 이야기에 나는 “뭐야 ㅋㅋㅋ” 하고 대답했다. 내 농과 달리 친구는 자못 진지했다.

“인터뷰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관상이 되게 부드러워졌어. 기본적으로 웃는 얼굴이 되는 것 같아. 처녀 때는 그냥 첫인상이 뭔가 날카롭다 이거였는데.”


20대 때는 하도 차가워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도도하고 시크해 보인단 소리겠지,라고 혼자 퉁 치고 넘겼다. 20대 후반 한 회사 같은 팀에서 오래도록 일한 친구가 그런 소릴 해주니 왠지 모를 신뢰가 갔다. 더군다나 얘는 친구라기보다 언니 쪽 분위기가 어울리는 사람으로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님을 나는 잘 안다. 그리고 왜 그런 친구 하나씩 있지 않나. 뭔가 신기 같은 게 육체 언저리에 퍼져 있어서 앞뒤 안 보고 믿고 싶어 지는.

영상 속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나와(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너무 동 떨어진다는 착각에 다소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관상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서 “살쪄서 그래 보이는 거야”라고 했다. 실제로 남편과 소개팅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너무 말라서 인상이 날카로워 보였다. 결혼 후 살이 찌더니 라인이 바뀌어 푸근하게 인상이 바뀌었고 (난 그게 살쪄서라고 믿고 있었다) 지금 모습을 난 더 좋아한다. 하지만 친구는 내 경우 살찐 것과 별개라고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살쪄서 부드러워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술궂게 보이는 사람도 없진 않으니까. 친구는 내가 살이 쪄서 변한 인상이 아니라 자꾸 웃어서 바뀐 인상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사실이다. 20대 때보다 지금이 훨씬 많이 웃고 웃을 일도 늘었다.


십수 년 전에 엄마가 자동차 면허증을 갱신해야 해서 증명사진을 새로 찍었는데 예전 증명사진과 함께 조르르 놓고 보니 집에 우환이 많고 잘 안 풀리던 시절에는 인상이 꽤 날카로워 보였고 낯빛도 어두웠는데 복잡했던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된 뒤에 찍은 사진에서는 얼굴에 광채가 돌고 유함이 드러나 가족끼리 신기해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안 좋은 일이 많을 때는 고민이 많다 보니 늘 인상을 찌푸리고 있게 돼서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생긴다든지 눈썹의 모양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웃을 일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모였던 주름이 골고루 얼굴에 분산돼 편해 보이게 된다.


한편으론 내 인터뷰 영상을 보고 좋아진 것을 찾아준 친구의 발견이 고마웠다. 내게 부족한 뭔가를 캐내 지적하기보다 살짝 보인 장점을 크게 봐준 친구. 아 정말 살이 찌건 말건 친구의 인상 좋아졌다는 한 마디에 다이어트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졌다. 우스개 소리로 살 좀 찌면 어때 행복한 돼지가 되겠어,라고 했는데 살 좀 찌면 어때 웃는 인상으로 변했단 소리 들었으면 그걸로 됐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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