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나서 쓰는 글
어린이집 선생님과 내가 작성하는 알림장이 있다.
나는 어린이집 가기 전 오전의 상태 혹은 전날의 컨디션을 메모하고
선생님은 오후에 아이 상태와 준비물 등을 메모해 보낸다.
나는 퇴근해서 아이 가방을 뒤져 이 알림장 보는 걸 좋아한다.
이 알림장을 쓰는 시간도 좋다.
딱히 쓸 말이 없는 날에도 뭔가 더 쓰고 싶어 진다.
선생님이 정성껏 빼곡히 칸을 채워 보내주실 때는 더더욱.
얼마 전 어린이집 OT에선 이 알림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몇몇 엄마들이 스마트폰 앱으로 작성하는 키즈노트를 제안했나 보다.
원장님은 이에 대해 단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셨는데,
편하다는 장점도 물론 있겠지만 본인은 선생님들이 아이들 챙기다 말고
중간중간 휴대폰을 만지는 게 꺼려진다고 하셨다.
그건 엄연히 노트 작성과는 다르다.
노트는 아이들이 잠을 자는 시간 틈틈이 쓰면 충분하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장님 말씀에 백번 동의했다.
나조차 스마트폰을 끼고 살다 보니 종이에 뭔가를 적을 날이 그리 많지 않다.
가계부도 컴퓨터로 하니 일기 정도일까?
알림장이 끝 페이지를 향해 갈수록 구겨지는 촉감과
선생님이 그날 활동한 아이 사진을 프린트해
직접 붙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 좋다.
무엇보다 다 쓰면 한 권이 남지 않는가.
앞으로도 계속 알림장 방식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이른 아침 아일랜드 식탁 앞에 서서 아이에 대해 적는 그 시간이
나에게 이렇게 값진 시간이 될 줄 몰랐기에 더 소중하다.
우리는 좀 더 손을 움직여 쓰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손가락으로 찍는 글보다 쓰는 글이 많아져야 한다.
단순히 글이 아니라 동그라미 체크일 뿐이라도.